손진호 어문기자
‘싸가지.’ 버릇이 없거나 예의범절을 차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언중은 ‘왕싸가지’ ‘내 사랑 싸가지’라는 표현으로도 쓴다. ‘싸가지’는 어린잎이나 줄기를 가리키는 ‘싹’에 ‘-아지’가 붙은 말이다. ‘-아지’는 망아지 송아지처럼 ‘작은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꼬라지(꼴+아지) 모가지(목+아지)처럼 비하(卑下)하는 의미를 더하기도 한다. ‘-아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말이 ‘-머리’다. 인정머리, 주변머리, 주책머리가 그렇다.
그런데 이 ‘싸가지’라는 말, 표준어가 아니다. 입말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는데도 ‘싹수’의 강원 전남 방언에 머물러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 등에 나오는 전남 지방의 ‘느자구’나 충청 지방에서 쓰는 ‘느저지’, 경북 문경 상주 지방의 ‘양통머리’도 ‘싹수’의 방언이다. ‘느자구’ ‘느저지’ ‘양통머리’는 몰라도 ‘싸가지’는 거의 모든 언중이 알고 있다. 그런데도 싸잡아서 방언 취급을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싸가지와 싹수는 모두 ‘싹’에서 나온 말이고, 두 말 모두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쓸 수 있다. 그걸 보면 싸가지는 처음 나왔을 때 싹수와 뜻이 같았던 것 같다. 그래서 싹수의 방언이라고 했을 것이다. 지금은 척 봐도 두 말의 의미와 쓰임새가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싸가지를 싹수의 방언으로 묶어놓고 있는 것은 억지스럽다.
‘싹수없는 놈이 싸가지까지 없다’라는 말은 성립하는가. 충분히 성립한다. 그렇다면 싹수와 싸가지는 각기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단어의 의미와 씀씀이는 끊임없이 변한다. ‘싸가지’는 이제 별도 표준어로 삼는 게 옳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