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진리에 배고파해라. 좀 (주변에) 이상하게 보여도 괜찮다.”
동안거 해제일인 4일 설악산 신흥사 조실인 오현 스님이 백담사 법문에서 한 말입니다. 이날 백담사 무금선원에서 3개월여 참선과 묵언 속의 정진을 마친 스님들은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휴대전화에 ‘노망이 들어 무문관(無門關)에 있다’는 문자를 남긴 오현 스님의 사연을 ‘¤길’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82세의 스님 역시 이 선원에서 다른 수행자들처럼 하루 한 끼만 먹으며 동안거를 지냈습니다.
오현 스님은 또 “스님들 말이 교황님, 시나리오 작가의 아카데미상 수상소감처럼 감동을 주지 못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며 자책했다고 합니다.
같은 날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는 방장 지선 스님(69)의 법문이 있었습니다. 지선 스님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종단 개혁과 사회 운동에 전념했습니다. 이후 갑작스럽게 운둔에 들어간 뒤 수행에 전념했습니다. 지난해 스님은 고불총림(백양사) 방장으로 취임했는데, 이른바 ‘운동권 스님’이 방장이 된 것은 처음입니다.
“득지본유(得持本有)라, 내가 얻은 것은 근본적으로 있던 것이 아니다. 돈도 내 것도 아니다. 영원히 내 것이 아니다.” 스님은 돈과 물질 위주의 사회를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스님의 법문 중 특히 마음에 다가왔던 대목은 이렇습니다. “나는 범부(凡夫)다. …여전히 갈등한다.” “지금은 나도 70세가 되어 여우로 변했다. 예전에는 불의를 보면 막 뛰어나갔지만 용기가 부족해졌다.”
스님들의 말이 과거처럼 감동을 주지 못해 아쉽다는 오현 스님의 말을 곰곰 씹어봅니다. 저는 적어도, 두 스님의 법문에는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 무문관 수행에 이어 스티브 잡스와 아카데미상 연설을 꺼내는 그 사고의 자유로움에 두 손을 들었습니다.
만약 지선 스님이 과거 이미지가 연장되는 말만 했다면 그 울림은 크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방장 스님이 ‘나는 범부’ ‘여우로 변했다’며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에 거꾸로 세월과 내공의 깊이를 느끼게 됩니다.
불교 행사에서 스님들의 말씀을 듣게 되는데 중국 선승에 얽힌 일화와 어려운 화두로 끝나기 십상입니다. 시간과 장소는 달라지지만 틀에 박힌 같은 그림의 재방송이 많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법문의 첫 조건은 그 분 삶 자체이고, 그 다음은 격의 없는 하심, 마지막으로 시대의 눈높이에 맞는 주제와 언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