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주먹구구식 입법’ 되풀이]‘졸속입법 후 보완’ 쳇바퀴
변협, 헌법소원 제출 대한변호사협회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서를 5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대한변협 채명성 법제이사(오른쪽), 강신업 공보이사가 청구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여야는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켰지만 일부 조항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는 대목이 포함되면서 헌법에서 규정한 다수결의 원칙 위반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해 4월 최경환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선진화법이 되레 정치 불신을 가중시키는 국회 마비법이 되고 있다”며 개선을 제안했다.
김영란법도 5일 대한변호사협회가 법 공포도 되기 전에 헌법소원을 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법안 상정에서 통과까지 2년 7개월이 걸린 만큼 정무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등에서 충분히 걸러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여론에 밀려 법안을 처리해 벌어진 ‘인재(人災)’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기 위해 2013년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른바 경제민주화법에 대해서도 법 개정 당시 위헌 시비가 꾸준히 제기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보니 국회에서 통과되긴 했지만 한 달 뒤 대한변협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의원 입법이 법치주의에 역행하고 권력 분립의 원칙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법조계의 날 선 비판까지 나왔다.
앞서 2011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개정돼 이중 규제 소지가 있음에도 포퓰리즘적 입법이 이뤄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가 시행령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규제 수위를 놓고 여야는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다.
○ ‘야누스법’ 양산 막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기관 스스로 위헌 소지를 안고 있는 법을 통과시키면서 ‘시대정신’ 운운하는 것은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진 법을 양산하는 궤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 야누스법 사례가 전두환추징법. 법이 통과된 2013년 6월에는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은닉재산 몰수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높았다. 비자금 은닉 의혹이 제기된 지 한 달도 안 돼 이 법은 국회 본회의 문턱을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하지만 올해 1월 서울고법은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 적법 절차의 원칙에 반하고 국민의 재산권과 법관의 양형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 한 번 제정된 법률은 고치기 어려워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나오더라도 쉽게 고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국회 법제실이 분석한 ‘위헌 결정 미개정 법률 현황’에 따르면 헌재의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불구하고 법령 개정이 완료되지 않은 법안이 10여 건에 이른다. 국가보안법처럼 법안 자체의 존폐에 대해 논의가 진행 중이거나 법 조항의 효력이 상실돼 추가적인 입법이 필요하지 않은 법안도 있다.
강경석 coolup@donga.com·황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