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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변영욱]진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해

입력 | 2015-03-06 03:00:00


변영욱 사진부 차장

국회에서 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나 진상 규명을 위한 회의 같은 장면을 촬영하다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다. 때론 자리를 뜨고 싶을 정도다. 사실 관계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현란한 말로 본질을 흐리는 ‘말솜씨의 경연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낙인찍기, 이분법, 말 끊기 등 증언대에 서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테크닉은 어느새 첨단을 넘어 식상한 지경에 이르렀다. 예전에 사진기자 선배들은 이런 때 카메라를 내려놓았다고 한다. 카메라가 정치인들을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농담과 함께.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일방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우리 역사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의 문화는 없었던 것일까?

군사독재 탓이 가장 클 것 같다. 5·18민주화운동(1980년) 당시 정부는 국내외 언론을 통제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들조차 검열의 대상이었다. 그해 5월 19일자부터 두 달여 동안 전두환 정부는 국내에 들어오는 뉴스위크와 타임 등에서 5·18민주화운동 기사를 삭제했다. 지금 전국의 도서관에 보관된 당시 잡지를 보면 기사는 오려져 있고 목차는 검은 매직으로 가려져 있다.

정치 토양이 척박한 시대에는 커뮤니케이션 방식 또한 척박했다. 정부가 진실을 밝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합리적 의심이건 음모론이건 공식 발표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일방적 주장도 공감을 얻고 박수를 받을 때가 있었다. 말을 하는 것 자체에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진상조사를 미루는 동안 대학생들 사이에서 광주항쟁의 사망자 수는 실제보다 10배 이상 부풀려졌다. 월간 말지 1990년 8월호는 1987년 KAL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가 가짜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안기부 지하 밀실에서 만난 그녀가 능숙한 서울 말투였다는 한 인사의 말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정권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이 의혹은 사실로 증명되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거리투쟁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활용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도로를 막고 구호를 외쳐야 했다. 한정된 시간에 주장을 펼치고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4자 구호나 8자 구호가 발전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논쟁보다는 보여 주기 식 시위가 민주주의 방식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이런 식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지금도 적절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위대와 정치적 견해가 같은 사람들은 이런 장면을 보며 속 시원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립지대 또는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설득되지 않는다. 영민한 시민들은 이제 과거의 방식에 놀라지도, 동의하지도, 설득되지도 않는다.

나와 견해와 신념이 다른 상대방에 대한 비판과 공격은 이제 상식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익숙한 커뮤니케이션의 방식과 이제 이별해야 할 때다. 그래야 사회도 진보하고 문화도 진보한다. 껍데기는 사라졌으면 좋겠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