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허니버터칩 열풍은 제조사인 해태제과뿐 아니라 업계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대형마트에서는 감자칩을 비롯한 스낵류의 지난해 4분기(10∼12월) 매출이 전년 대비 23% 올랐다고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극심한 매출 정체에 시달려 왔던 제과업계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좀 답답한 느낌이 든다. 달콤한 감자칩 외에 국내 제과업계가 최근 몇 년 사이 내놓은 신제품은 가뭄에 돋아난 콩 싹 만큼이나 적다. 국내 제과업체들은 실제로 신제품 없이 장수 제품만 우려먹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사실은 ‘종합 과자선물세트’ 하나만 열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제품이 20∼30년 전 시판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과업체 대다수는 한동안 신제품을 만들지 않다가 허니버터칩이 인기를 얻은 분위기를 타고 너도나도 ‘미투(me-too·유사) 제품’을 내놓았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미투 제품을 통해서라도 업계 전체가 수혜를 봤으니 좋지 않은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미투 제품은 태생적인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바로 ‘브랜드 진부화’다. 미투 제품의 범람은 새로운 것을 단기간 안에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너무 뜨겁게 달아오른 것은 소비자들의 싫증을 부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업계 전문가들은 ‘꿀맛 과자 열풍’이 단기간의 유행에 그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최근 만난 한 식품업체 간부는 “요즘같이 경기가 어려울 때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그 제품이 대중의 관심을 끌게 하는 데 필요한 ‘총알’(자금 여력)을 마음껏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소매 시스템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현행 소매 시스템에서는 신제품을 대형마트 판매대에 올리고 싶은 회사는 자사의 기존 제품을 내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제품 개발에 인색한 기업들의 태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래된 것 중에도 좋은 것이 많지만, 우리 소비자들도 어릴 때 먹던 것을 벗어나 ‘맛의 신세계’를 만나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청나라 말 서구식 근대화 개혁인 양무운동(洋務運動)을 이끈 좌종당(左宗棠)은 ‘학문이란 물을 거슬러 배를 저어가는 것과 같아 나아가지 않으면 곧 물러나게 된다(學問如逆水行舟不進則退)’고 했다. 비즈니스도 이와 같지 않을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는 기업은 결국 세월의 물살에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