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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선물

입력 | 2015-03-09 03:00:00


선물 ―정다혜(1955∼ )

갱년기 우울증으로 한동안 소식 끊겼던 친구, 갑자기 수다쟁이가 되어 첫눈처럼 찾아왔지 뭐예요. 깍쟁이 그 친구 갈빗집에서 밥까지 샀어요. 그 이유가 궁금한데도 그냥 싱글벙글 했지요. 무슨 이유가 있는지 무슨 비법이 있는지 따지듯이 묻자 마지못해 입을 열듯 선물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친구. 그 선물이 커다란 다이아몬드인지 값이 오른 부동산인지 몰라 궁금증이 들끓는데, 그 뜨거움 단숨에 식히는 친구의 고백. 열흘 전에 첫 손자를 선물 받았어!

사람의 상처는
사람으로 치료된다는 것을
예순에 손자를 선물 받고
할머니란 이름을 선물 받고
단숨에 알아버렸다는 친구.




‘갱년기 우울증’은 호르몬 영향이라지만 하루하루 허덕이며 먹고사는 처지에서는 그걸 앓고 있을 여유가 없다. 갱년기 우울증이 뭔지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자그마한 복일 테다. 화자의 친구는 부동산이 좀 있는 사람, 보석 사치도 누릴 만하게 산다. 노후 생활에 아무 걱정 없으니 오직 속절없이 나이 든 것만이 안타까울 뿐. 삶을 즐길 의욕에 차 있는 젊은 날에는 경제력이 없고, 경제력이 있는 노년에는 즐길 거리도, 의욕도 줄어드는 게 인생이어라.

‘갱년기 우울증으로 한동안 소식 끊겼던 친구, 갑자기 수다쟁이가 되어 첫눈처럼 찾아왔다’고 한다. 현실 감각 있고 생활력 강했던 친구의 돌연한 변화에 걱정하던 차, 그 친구의 활기찬 모습에 화자는 ‘첫눈’처럼 반갑고 덩달아 마음이 환해졌단다. 친구는 웃음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그 ‘깍쟁이’가 ‘갈빗집에서 밥까지 샀다’니 더 좋아진 게다. 그 심각했던 우울증을 이리 날려 보낸 비결이 뭘까? 평소 친구의 성향으로 넘겨짚어 본 화자의 의표를 찌르는 답, 첫 손자의 탄생! 생의 일선에서 물러나는 건 힘들지만 삼선이 되면 차라리 초연해지는 건가. 모든 게 허망하고 시들해지는 갱년기 고개에 3세의 탄생이 ‘영차!’ 힘을 실어줄 수도 있겠다. 화자의 친구는 ‘할머니’로서의 삶을 새로이 펼치리라. 남자들은 ‘은퇴한 뒤의 삶’이 막막하기 쉽지만 여자의 삶에 은퇴란 없다. 예순 살일 화자의 것으로는 시의 어조가 참으로 발랄하다. 여자들은 예순이건 일흔이건 오랜 친구끼리 “어머, 얘는!” 하며 산다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