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성과에 목마른 朴대통령… 비장의 카드로 꺼낸 정치인 장관 사실상 추석까지 ‘시한부 내각’에 후보 4명 위장전입으로 이미 상처 이들이 개혁 총대 멜 수는 있을까
이재명 기자
경북지역 의원들을 만났을 때다. “대표님(대통령이 되기 전 의원들은 박 대통령을 이렇게 불렀다) 건배사 하나 해주세요.” 참석자들이 졸랐다. 좀처럼 건배사를 하지 않는 박 대통령은 큰마음을 먹고 외쳤다. “진달래!” ‘진심을 다해 달리는 내일을 위해’라는 뜻이었다. 새누리당 전체가 총선 패배감에 휩싸여 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의미심장한 건배사였다.
그러자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는 한 의원이 나섰다. “대표님, ‘진달래’에는 다른 뜻도 있습니다.” 다들 귀를 쫑긋 세웠다. “진짜 달라면 줄래? 하하하….” 혼자만 웃었다. 2분간 정적이 흘렀다. 모두에게 2시간처럼 느껴졌을 긴 시간이었다. ‘사고’를 친 의원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뜬 뒤에야 분위기는 수습됐다.
그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유세 일정에 자신의 지역구를 포함시키려고 눈에 쌍심지를 켰다. 박 대통령이 다녀가면 지지율이 올라가는 게 눈에 보이던 때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박 대통령 일정에서 자신의 지역구가 빠지자 총선 상황실에 드러눕다시피 했다. ‘배 째라 식’ 결기(?)는 통했다. 박 대통령은 이 의원의 지역구를 방문했다.
총선 당일 이 의원에게서 투표를 독려하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내용이었다. 영락없는 모태(母胎) ‘친박(친박근혜)’의 멘트였다. 하지만 이 의원은 지금도 앞장서서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표적 ‘비박(비박근혜)’이다. 올해 1월 말 이 의원은 지역구에 뿌리는 의정보고서 첫 장에 박 대통령과 자신이 함께 찍은 사진을 실었다가 급히 자신의 독사진으로 바꿨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하자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달면 남의 것도 뺏어 먹고 쓰면 삼킨 것도 토해내는 의원들의 행태에 박 대통령은 신물이 났을 게다. 임기 초 인사에서 정치인들을 배제한 건 이런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신 그 자리에 관료나 법조인을 배치했다. 그럼에도 ‘보신주의’ 속에 정책은 겉돌았다. 메뉴는 차고 넘치는데 대표 메뉴는 없는 ‘김밥천국 정부’라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박 대통령은 정치인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꿩 잡는 게 매’라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든, 정치적 야망을 위해서든 성과만 내달라는 절박함에서다. 청와대 핵심 인사는 “이제야 진용을 갖췄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취임 2년 만에 권력 내부에서 나온 긍정 평가다.
박 대통령이 중동 순방에서 돌아오는 9일부터 의원인 유기준 해양수산부,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등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고작 6개월 남짓한 장관 임기를 위해 박 대통령은 적잖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미 장관 후보자 4명 모두의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났다. 시한부 ‘이완구 내각’은 출발부터 감동, 신뢰와는 거리가 멀다.
이제 남은 건 ‘신상필벌’이다. 의원 출신 장관들이 적을 만들 수밖에 없는 개혁과제에 총대를 멜까. 그런 점에서 장관 해임건의권을 행사하겠다는 이 총리의 취임 일성은 엄포로 끝나선 안 된다. “개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당으로) 돌아오지 마라”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말은 공천의 제1원칙이 돼야 한다.―카타르에서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