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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2등시민 취급” “남성자매들 같이 갑시다”

입력 | 2015-03-10 03:00:00

‘세계 여성의 날’ 107주년 표정
세계 곳곳서 여성들 거리행진… 중동 남성들도 부르카 쓰고 참가
IS 등의 여성폭력에 비판 목소리




‘지구의 절반’ 여성을 위해… 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 참석한 여성들이 ‘나는 여성을 위해 걷는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에서는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반정부 시위에서 얼굴에 페인팅을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뉴욕·마나과=신화 AP 뉴시스

8일 전 세계는 여성 권익 신장을 요구하는 외침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계 여성의 날’ 107주년을 맞아 각국은 한마음으로 여성계가 이룬 성과를 축하하는 한편 당면과제 해결을 위한 결의를 다졌다. 나라마다 일 가족 양립, 이주 여성 권익 등 내세우는 메시지가 다르기도 했지만 최근 이슬람국가(IS)의 잔혹한 여성폭력을 의식한 듯(영국 BBC) ‘여성폭력’이 공동 화두로 등장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 시 맨해튼에서 열린 거리행진은 떠들썩한 축제였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남녀 수천 명이 “여성의 권리가 인류의 권리!”라는 구호를 외치며 유엔 본부 앞에서 타임스스퀘어까지 행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낸 기념성명에서 “여성이 세계적으로 큰 공헌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여러 곳에서 2등 시민 취급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뉴욕 행진에 참여한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의 부인 셜레인 매크레이 여사는 “이 자리는 수세대에 걸친 페미니스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라며 “100년도 더 전에 행진이 시작됐지만 아직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리마 보위는 시위에 참석한 남성들을 “남성 자매”라고 부르며 남성들의 참여를 강조했다. 행진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참여했다.

영국 런던 시위에도 수천 명이 참여했다. 세계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가인 에멀라인 팽크허스트의 증손녀와 고손녀 등 수백 명의 정치인 배우 등 명사들이 동참했다. 참여 여성 상당수는 긴 치마와 모자 등 참정권을 요구하던 시절 여성들의 차림을 재현하기도 했다.

터키의 경우 최근 성폭행을 당한 뒤 잔인하게 살해당한 외즈게잔 아슬란 씨(20)의 추모 행사가 여성의 날 행사로 번졌다. 시민 수백 명이 거리로 나와 “여성혐오증이 기승을 부리면서 여성폭력 건수가 급증했다”며 자전거를 타고 이스탄불의 포브스 다리를 건너는 자전거시위를 벌였다. 아슬란 씨를 추모하며 ‘미니스커트 캠페인’을 벌인 터키 남성들 중 일부는 이날도 치마를 입고 등장했다. 수도 앙카라에서는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IS의 성노예화와 성폭력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터키를 포함한 중동지역에서는 이례적으로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눈길을 모았다. 성불평등지수가 최하위권인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는 남성들이 여성 억압의 상징인 부르카를 두르고 거리로 나와 여성 학대와 폭력을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잦은 여성 대상 범죄로 악명이 높은 인도에서는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는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을 타지마할에 초청하는 행사가 열렸다. 또 성폭행당한 여성에게 “더럽혀졌다”며 황산테러를 하는 범죄를 비난하는 피해 여성들의 모금 행사도 있었다.

국제여성인권단체 페멘(FEMEN)과 배스터스(Bastardxs) 회원들은 파리와 브라질에서 “가슴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에게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상의를 벗는 퍼포먼스를 했다. 클린턴 가족 소유의 클린턴재단은 광고회사와 손잡고 성 상품화에 반대하는 취지를 담아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40여 개 옥외광고에서 여성의 모습을 지웠다.

유명인들의 이색 발언도 화제를 모았다. 괴짜 부호로 유명한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은 허핑턴포스트 블로그에 “여성을 기용 안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여성들이 리더가 되면 불안해하는 문화가 문제”라며 일침을 놨다. 그는 최근 셰릴 샌드버그의 린인재단이 주최한 성차별 퇴치회담에 참석한 소감을 전하며 “여성 기장이 스피커로 인사를 하면 승객들이 겁에 질린다. 여성이 지도력을 발휘하면 거부감을 느끼는 문화가 문제”라고 밝혔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