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와 동시에 건립된 석굴암은 왜 멀찌감치 산꼭대기에 지었을까 최연식 동국대 교수 논문서 주장
웅장한 원형 돔을 배경으로 석굴암 본존불이 장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같은 시기에 건립된 불국사(아래)와 달리 토함산 꼭대기에 석굴암을 지은 이유에 대해 새로운 학설이 제기됐다. 동아일보DB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 대목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의상(625∼702)의 직계 제자인 표훈(表訓)은 751년 불국사가 창건되자 초대 주지를 맡았고 화엄종을 신라불교의 주류로 올려놓은 인물이다. 얼핏 하늘에 있는 궁을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표현에서 도술을 부리는 신승(神僧)을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것은 옛 사람들이 즐겨 구전한 한낱 전설에 불과한 것인가.
최연식 동국대 교수는 최근 발표한 ‘표훈의 일승세계론(一乘世界論)과 불국사·석굴암’ 논문에서 불국사와 석굴암의 창건 배경에 대해 표훈의 사상과 연관지어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최 교수에 따르면 삼국유사에 나오는 천궁은 석굴암으로 표훈과 그의 제자들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오가는 특별한 수행을 행했다. 또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신라 재상 김대성이 스승으로 숭모한 표훈의 일승세계론을 불국사와 석굴암 건립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불국사와 석굴암 건립에서 표훈의 역할에 주목한 고(故) 김상현 동국대 교수의 학설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해인삼매(海印三昧·바다에 천지만물이 비치듯 우주의 진리를 온전히 깨닫는 경지)로 표현되는 부처의 깨달음이 보현(부처의 깨달음을 중생에게 전하는 보살)을 통해 중생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다룬 ‘일승세계론’에 초점을 맞췄다.
표훈의 일승세계론에 따르면 △부처가 해인삼매에 들어 깨달음을 얻고(망상해인·忘像海印) △이를 스스로 관조한 뒤(현상해인·現像海印) △중생들에게 전하기 위해 깨달음을 밖으로 드러내고(불외향해인·佛外向海印) △보현보살이 삼매에 들어 이를 받은 뒤(보현입정해인·普賢入定海印) △삼매에서 나와 중생들에게 설법하는 단계(보현출정해인·普賢出定海印)를 거치게 된다.
이 중 부처의 내면세계와 직결되는 망상해인·현상해인·불외향해인은 석굴암, 보현의 영역인 보현입정해인·보현출정해인은 불국사를 각각 상징한다는 것이 최 교수의 설명이다. 최 교수는 “토함산 기슭에 있는 불국사와 달리 석굴암은 일반인(중생)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산꼭대기에 있어 현상 세계와 구분된 근원적인 세계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이어 “석굴암이 다른 일반 사찰과 달리 돌을 쌓아올린 석굴의 형식을 취한 것도 감춰진 진리, 부처의 내면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석굴암 본존이 후실(後室) 중앙에서 뒤로 약간 물러나 있는 것은 깨달음을 얻으려고 찾아온 보현(수행자)을 위한 공간이라는 해석이다.
정병삼 숙명여대 교수는 “불국사, 석굴암의 건립 배경과 관련된 설명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이라며 “다만 조각이나 건축구조에 대한 연관성이 조금 더 규명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