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 씨 제공
정동현 셰프
이 커리를 만드는 데는 하나의 공식이 있다. 양파와 생강 같은 뿌리채소를 볶은 뒤 가루를 낸 향신료들을 그 위에 붓고 같이 또 볶는다. 그리고 종류에 따라 토마토를 잔뜩 넣거나 하얗고 고소한 코코넛 밀크 아니면 시큼한 요구르트를 붓는다. 온갖 향신료를 갈고 볶고 은근히 끓이거나 물 없이 재료를 넣고 볶으면 커리가 되는 것이다(커리는 물이 많은, 우리가 흔히 먹는 ‘wet curry’, 그리고 볶음에 가까운 ‘dry curry’로 나뉜다). 핵심은 향신료 가루 비율. 향신료 각각의 개성을 살리는 배합의 묘를 깨치면 커리를 마스터했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정통 커리를 배운 것은 요리학교에서였다. 영국 선생님이 먼저 강황, 회향, 고수 씨 가루를 섞었다. 이때 나와 같이 뒷자리에서 불량 학생처럼 등을 기대고 앉아있던 인도 유학생, 삭시가 속삭였다.
삭시 말마따나 영국에서는 파우더를 많이 쓴다. 매번 가루를 갈 필요가 없어 편하고 개량하기도 좋기 때문이다. 그 대신 직접 갈아 쓰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향은 떨어진다. 영국과 인도 커리가 다른 점은 그것만이 아니다. 바로 버터와 크림이다. 춥고 어두운 영국으로 건너온 커리는 좀 더 기름지고 녹진해졌다. 인도의 맑은 버터 기(ghee)와 코코넛 밀크 대신 버터와 크림을 써서 그렇다. 여기에 요구르트와 향신료에 재워둔 닭고기를 오븐에 구워 보글거리는 붉은 액체에 넣으면 커리의 슈퍼스타, 치킨 티카 마살라가 탄생한다.
드디어 선생님이 만든 커리를 맛보는 시간. 생강과 양파, 마늘이 맛의 밑을 받치고 카르다몸(cardamom), 휘향 같은 이른바 분내 나는 향신료들이 그 위에서 향을 뿜으며 춤을 췄다. 20대 팔팔한 젊음을 무기 삼아 떠돌던, 태양이 작열하는 인도의 뒷골목에서 먹은 커리의 맛도, 나를 보며 웃던 인도 신사의 동그란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그때 삭시가 나에게 귀엣말을 했다.
“뭄바이에 내가 아는 커리 집이 있는데 선생님이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어.”
“그래? 거기 커리는 어떻게 맛있는데?”
예전에 먹던 맛을 찾아 한국에서 커리를 먹노라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커리 맛이 어딜 가나 비슷하고 그 맛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런 집들은 백이면 백, 페이스트로 나오는 커리 제품을 사다 쓴 것이다. 그럴 때마다 삭시의 귀엣말이 떠오른다.
“그때그때 갈아 써야 해.”
정직한 원칙, 별것 아닌 비법. 하긴 그런 게 커리뿐이겠냐마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필자(33)는 영국 고든 램지 요리학교 ‘탕트 마리’에서 유학하고 호주 멜버른 크라운 호텔 등 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정동현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