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 美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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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25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9·11테러 직후 미 의회를 통과한 ‘애국법’에 서명하고 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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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국법’이 만들어진 배경은 2001년 9·11테러였다. 미국에 대한 추가 테러를 막고 테러의 주범이었던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라덴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미 의회는 연방수사국(FBI) 등 수사기관의 대테러 활동을 강화하고 감청 및 수색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법안 마련에 착수해 2001년 10월 25일 ‘애국법’이라는 이름으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후 사회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자 법의 위헌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쏟아졌다. 법 통과 3년 만인 2004년 2월 35개 주 240개 지방 정부는 아예 부시 행정부를 향해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다며 법 집행 자체를 거부하고 나섰다.
설상가상으로 법 제정 이후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국가안보국(NSA) 등의 무소불위적 수사 행태가 본격적으로 비판받기 시작했다. 2013년 6월 에드워드 스노든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이 NSA가 미국 내 테러 분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무차별 감청 등 국민 사생활을 광범위하게 침해했다고 폭로한 게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해 12월 미 연방 1심 법원인 워싱턴 지방법원은 시민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위헌 소송에서 “NSA의 정보 수집은 시민에 대한 부당한 압수 수색을 금지한 미 수정 헌법 4조를 위배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전문가 5인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통해 개선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기반으로 NSA가 미국 시민들에 대한 전화 통화 내용을 수집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명시하는 내용의 ‘미국자유법안(USA Freedom Act)’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지난해 5월 연방 하원을 통과했지만 11월 상원 통과에 실패해 재상정 여부가 주목된다.
○ 기관 설립보다 테러에 대한 정의가 먼저
미국 ‘애국법’은 테러 개념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즉 ‘테러’란 △민간인들을 협박하거나 강요하기 위한 의도로 행해지거나 △협박이나 강요에 의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행해지거나 △집단적 파괴, 암살, 유괴 등에 의해 정부의 행위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행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한국 법 체계에서는 ‘테러’ 개념에 대한 정의는 없고 1982년 대통령 훈령으로 마련된 ‘국가대테러활동지침’이 전부다. 미국의 한 테러법 전문가는 “테러란 무엇인지, 테러의 행위와 주체를 어떻게 정할지 하는 문제는 테러방지 실행 매뉴얼을 만들기 위한 기본 출발”이라며 “예를 들어 테러행위를 국내인이나 북한으로만 한정할 경우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이슬람국가(IS) 테러범들은 추방밖에는 대응 방법이 없게 된다”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기구 설립도 서둘 일이 아니라고 조언한다. 미국은 ‘애국법’ 제정 후 수사기관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대테러 조직을 신설했다. 그 결과 생겨난 것 중 하나가 무려 22개 부처와 기관을 통합한 ‘슈퍼 대테러 기관’인 국토안보부(DHS)였다. 국토안보부가 너무 비대하다 보니 연방수사국(FBI) 등 다른 관련 기관과의 업무 충돌이 빈번했고, 이 때문에 기능을 일부 재조정해야 했다.
익명을 요구한 FBI 워싱턴지국의 한 관계자는 “기관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조직을 무조건 합친다고 해서 대테러 기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존 조직들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는지 점검이 선행되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은 국가정보국(DNI)을 중심으로 DHS 정보분석처, FBI, CIA, NSA 등 관련 조직이 테러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이른바 ‘테러 정보 커뮤니티’를 형성해 협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 의회가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 대응 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만든 테러방지법. 국가안보를 위한 법안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법명에 ‘Patriot(애국자)’을 넣었다. 테러 용의자를 조기에 파악하기 위해 수사기관의 유선, 구두 통신 및 e메일 감청을 대폭 확대하고 테러 혐의를 받는 외국인의 기소 전 구금 기간을 48시간에서 최고 7일까지 늘린 것 등이 핵심이다.
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신석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