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없이 글로만 채운 건축비평 계간지 ‘건축평단’ 펴낸 사람들
“뜬구름 잡는 현학적 잡글이 아닌, 오늘 우리의 건축에 대한 현장의 고민을 담겠다.” 건축비평계간지 ‘건축평단’을 펴낸 함성호 이종건 서재원 씨(오른쪽부터).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망할 각오로 시작한 건가….’ 비평이 죽었다는 자조(自嘲)가 떠도는 시기에 “건축을 오로지 글로 논하겠다”며 정색하고 나선 까닭이 궁금했다. 창간 작업에 참여한 10여 명의 건축가와 비평가 중 3명을 9일 서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이종건 주간=사진 게재?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 시대의 건축에 대해 치밀하게 조직해낸 글의 가치를 공감하는 친구들이 있을 거라 믿고 벌인 일이다. 10명만 넘으면 발간의 지속성을 불안하게나마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기존 건축지는 소재와 내용을 먼저 정해놓고 필자를 골라 요청했다. 자신이 설계한 건물에 대한 글을 쓸 이를 건축가가 지정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렇다 보니 저널보다는 ‘광고판’에 가까워졌다.
서재원 aoa아키텍츠 대표=필자로만 참여했다. 창간호 주제가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와 ‘건축설계 교육, 이것이 문제다’인데 후반부 주제의 첫 글을 썼다. 한국 사회는 언젠가부터 ‘진지함’을 ‘나쁨’과 거의 동일시하고 있다. 대학 교육현장도 마찬가지다. 온통 ‘재미’에 대한 강박뿐이다. 그래서 뭐가 남았나. 재미있는 실험과 진지한 성찰의 균형을 도모해야 할 때다. 더 많은, 더 진지한 글이 필요하다.
함=잘 정돈된 글이어야 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동안 건축지에 도무지 읽을 수 없는 ‘글이라 할 수 없는 글’이 가득 실려 나왔다. 그런 잡지는 고 김수근 선생이 발간한 초창기 ‘공간’처럼 문화 전반을 아우른 소식을 알리기 위해 발간된 게 아니었다. 건설자본가의 홍보수단이었을 뿐이다. 유학에서 막 돌아온 젊은 건축가가 독자를 유혹할 미끼로 유용하게 쓰였다. 스스로도 소화하지 못한 얄팍한 관념적 언어가 나열됐다.
이=설익은 지식을 그럴듯한 표제로 포장한 글은 배제할 거다. 건축의 모든 고민은 결국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이다. 그 고민을 파고들어 감상을 넘어선 교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글을 찾는다. 건축계 밖 인사의 글도 환영한다. 첫 주제는 그런 각오의 선언이다. 여름호 주제는 ‘건축가는 누구인가’로 정했다.
함=동감이다. 좋은 글과 건축에 목마른 독자가 찾아오는 맑고 깊은 우물처럼 오래 남도록 힘을 보태겠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