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옥타브 고음종결자 신화를 쓰고… 팝 신데렐라 머라이어 캐리
임형주 팝페라테너
인기 여가수 머라이어 캐리입니다! 1990년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수차례 그래미상과 아메리칸뮤직어워드, 월드뮤직어워드 등 세계적
권위의 음악상들과 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제가상까지 거머쥔 것을 거론하지 않아도 역대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가장 많이 오른
‘비틀스’(20곡)에 이어 2위(18곡)라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위대한 활약상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 토미 머톨라와의 만남과 결혼
머라이어 캐리는 1970년 3월 27일 뉴욕 주 롱아일랜드 헌팅턴에서 태어났습니다. 머라이어 캐리는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아서인지는 몰라도 세 살 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아리아를 이탈리아 원어로 부르기도 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머라이어 캐리는 뉴욕 주의 그린론 소재 올드필드 중학교와 하버필즈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가수가 되기 위한 연습과 여러 오디션 때문에 결석이 빈번했지요. 학교 측에선 그녀의 데모테이프를 듣고 너무 놀란 교사들과 친구들이 그녀에게 ‘미라지’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을 만큼 큰 응원을 보냈다고 합니다. 머라이어 캐리는 당시 유명 여가수 브렌다 K 스타의 백업 싱어(보조 가수)가 되면서 자신의 음악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 단숨에 ‘슈퍼스타’의 자리에!
1990년 6월, 머라이어 캐리는 본인의 이름을 타이틀로 한 데뷔앨범 ‘Mariah Carey’를 발매합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차지하며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인 대성공을 기록합니다. 또 이 음반의 수록곡 중 빌보드 싱글차트 1위곡이 무려 4곡이나 나왔고, 제33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선 최우수 신인상과 팝부문 최우수 여자 보컬상을 수상합니다. 그녀는 1991년 9월, 두 번째 정규앨범인 ‘Emotions’를 발매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차트 4위라는 전작에 비해 무척 저조한 성적을 얻게 되었고, 여러 평론가들로부터 혹평까지 받으며 그녀의 성공적인 음악인생에 처음으로 실패를 안겨주었습니다.
○ 기나긴 ‘슬럼프’ 속으로
두 번째 정규앨범 이후 ‘Music Box’, ‘Merry Christmas’, ‘Daydream’까지 여러 장의 정규앨범과 수십 장의 싱글앨범, 그리고 수차례의 월드투어 콘서트와 수많은 시상식에서의 수상 기록까지, 그녀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도 불행의 그림자가 점점 드리우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과도하게 집착했던 스무 살 연상의 남편 머톨라와의 불화였습니다. 그녀는 곧 그와의 별거를 공식 발표합니다. 그동안의 남편의 보수적인 프로듀싱을 탈피하고자 핫팬츠를 입고 섹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대대적인 변신을 꾀하게 됩니다. 그 앨범이 1997년 발표한 정규 6집 ‘Butterfly’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그녀의 변신에 음악평론가들과 팬 모두가 굉장히 낯설어 했으며, 많은 팬들은 실망까지 하게 되었지요.
○ 화려한 재기와 재혼 및 출산
그는 2008년 배우 겸 래퍼인 닉 캐넌과의 깜짝 결혼식에 이어 2011년 4월 30일 아들과 딸 쌍둥이 남매를 순산하며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최근 또다시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것 같아 애석하고 아쉬운데요. 젊은 시절부터 성대를 너무 혹사시킨 탓에 성대결절 증상을 여러 차례 앓게 되었고, 최근 그녀의 월드투어(한국 포함) 콘서트에서는 전성기 시절의 7옥타브 고음 종결자가 아닌 마치 ‘고음 불가’ 같은 실망스러운 라이브를 선보이며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그녀가 다시 한 번 진정한 디바의 모습을 보여주며 오래도록 전 세계 수많은 팬들에게 눈부시게 빛나는 노래를 선사해주었으면 합니다.
임형주 팝페라테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