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뒤 리퍼트 피습 등에서 깜짝 놀랄 만한 변화 과거 오락가락 처신으로 국민들은 여전히 의문 가져 세계 지도자들의 화두… 널리 인정받으면 새로운 기회 열릴 것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진정성 리더십의 뛰어난 가치는 정치 지도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 그제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과거사 인식을 비판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대표적 인물이다. 멋이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늘 겸손한 말과 꾸밈없는 행동으로 자신의 진심을 전한다는 인상을 대중에게 준다. 일본을 향해 용기 있게 던진 그의 쓴소리가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이런 진정성 리더십의 강점 덕분이다.
불과 3년여 전인 2012년 2월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주요 인사들은 주한 미국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문 대표는 2011년 펴낸 책 ‘운명’에서 자신의 부모가 흥남 철수 때 미군의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 한마디도 고맙다는 말을 담지 않았다. 오히려 ‘배에 탄 피란민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며 미군을 힐난하듯 썼다. 따지자면 ‘반미’에서 ‘친미’로 급속한 좌표 이동이다. 그만큼 문 대표의 말과 행동에 진정성이 있는지 국민들도 일단 의문을 갖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전부터 문 대표의 언행에는 모순적인 것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우파(右派) 시각의 영화인 ‘국제시장’을 본 뒤 “영화 관람까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개탄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선거 때 ‘광해’ ‘변호인’ 등 영화 관람을 하면서 지지층 결집의 장으로 이용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 때에는 유가족 유민 아빠의 단식을 중단시키러 간다더니 그대로 눌러앉아 9일 동안 동조 단식을 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당의 ‘야권연대 불가’ 방침에도 ‘지역별 야권연대’는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지금은 ‘원칙 없는 야권연대는 없다’는 입장으로 바뀐 상태다.
이 정도의 오락가락 전력이라면 문 대표에게 절실한 것은 진정성 리더십이다. 지나간 일들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지금부터 하는 말과 행동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믿음을 유권자들에게 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정치적 속내를 쉽게 드러내는 편이다. 당 대표가 된 다음 날인 올해 2월 9일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뒤 “진정한 국민 통합은 역사의 가해자 측에서 반성할 때 이뤄진다”고 덧붙인 것도 불필요한 언급이었으나 더 큰 악수(惡手)는 “참배가 우리 당을 살려내는 길 아니겠나”라고 말한 것이었다. 당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수 없이 갔다고 고백한 꼴이다.
드라마가 감동을 주기 위한 요소 가운데 ‘핍진성(逼眞性)’이라는 것이 있다.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은 눈앞에서 이뤄지는 연극이 배우들에 의한 허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짓거나 웃음을 터뜨리는 것은 공연 중에는 연극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감을 높이는 일이 핍진성이다. 정치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만들어내는 일이라면 새정치연합이 최소한 유권자 눈에는 “정말 변했다”는 공감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눈속임이 아닌 진정한 변화이고 쇄신이라면 더없이 바람직할 터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