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수협·산림 조합장 1326명을 뽑는 ‘제1회 전국 동시 조합장선거’가 11일 실시됐다. 이번 선거는 사상 처음 선거관리위원회 주관으로 전국 조합에서 동시에 치러져 높은 관심을 모았다. 투표율은 80.2%(잠정)로 집계돼 2005년 이후 치러진 개별 조합장 선거의 평균 투표율(78.4%)보다 높았다. 그러나 ‘돈 선거’ 광풍은 여전했고 제도상의 허점 때문에 정책선거가 실종됐다는 평가다.
● 불법·탈법 얼룩진 선거
경북 청도에서는 1월 A 씨(59)가 조합원 4명에게 지지를 부탁하며 540만 원을 건넨 혐의로 구속됐다. 인천의 후보자 B 씨는 설 연휴를 앞두고 경로당을 방문해 농협 예산으로 지원되는 유류비를 직접 전달했다가 고발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0일까지 전국에서 위법행위 746건이 적발됐다. 선관위는 이 가운데 147건을 고발하고 74건을 수사의뢰 및 이첩, 525건을 경고 조치했다. 특히 기부행위가 전체 위법행위 중 291건에 달해 당선 무효가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불·탈법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조합장이 농어촌에서 막강한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조합장은 임기 4년 간 최고 1억 원 상당의 연봉과 각종 업무 추진비를 받는다. 또 인사권과 각종 사업의 집행권을 행사한다. 강원 고성군의 한 조합원은 “(조합장 자리를) 탐낼 만하니까 서로 하려고 욕심내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갈라진 농어촌 민심을 봉합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경북 김천시에서는 사전 선거운동과 금품수수 등의 혐의로 조합장 후보와 조합원들이 조사를 받고 있다. 같은 동네에 살던 이들이 서로 고발하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한 조합원은 “선거는 끝났지만 어제까지 으르렁대던 반대편 조합원의 얼굴을 들녘에서 볼 생각을 하니 착잡하다”고 말했다.
고검장 출신인 소병철 농협대 석좌교수는 “유권자 수가 조합당 평균 2200명 남짓이어서 후보자들이 돈 선거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근본적으로는 일부 국가 예산을 지원받음에도 조합장과 조합원들의 공공의식이 부족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 ‘정책 실종’ 개선책 필요
이번 선거에서는 토론회나 합동연설회 등이 모두 금지됐다. 또 예비후보 등록도 없고 후보자 본인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다. 후보가 자신을 알리기도, 유권자들이 후보를 제대로 알 수도 없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현 조합장의 ‘현직 프리미엄’만 높였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인지 전국 1326개 조합 가운데 204개 조합(15.3%)에서 후보자가 단독 출마해 무투표 당선됐다.
충북의 한 단위농협 조합원 양모 씨(56)는 “투표장에 막상 들어서니 누구를 선택할지 몰라 결국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낸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며 “연설회를 한번이라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고 말했다.
▶ 전국동시조합장선거 당선자 현황
고성=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청도=장영훈 기자 j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