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드러머 한웅원이 본 영화 ‘위플래쉬’
앤드루(마일스 텔러)는 자신이 지닌 모든 걸 드럼을 향해 메다꽂는다. 열정과 굉음만이 청춘의 텅 빈 연습실을 채울 수 있다. 영화 ‘위플래쉬’의 세계는 그렇게 돌아간다. 올댓시네마 제공
영화는 ‘연습’-‘음악’-‘연습’의 밀도 높은 연쇄에 로맨스 하나 끼워주지 않는다. 빅밴드 재즈와 드럼 연주만 편집증처럼 파고든다. 드럼을 때린 스틱 파편이 스크린 너머로 튈 것 같다. 지난달 아카데미에서 3관왕(남우조연상, 음향상, 편집상)에 오른 이 영화를 뜨거운 재즈 드러머 한웅원(29·사진)과 함께 봤다.
한웅원은 신해철 재즈밴드에 몸담았으며 현재 프렐류드, 트리오 클로저, SJQ의 멤버이자 4개 대학에 출강하는 재즈 교육자이기도 하다. 영화가 흐르는 동안, 그는 오른손 끝으로 가방을 두드리며 끝없이 영화 속 리듬을 좇았다. 그의 눈으로 봤다.
한웅원은 극장을 나서며 “드러머의 애환과 빅밴드 재즈 연주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며 높은 점수를 줬다. 극 중 연주는 텔러가 대역 없이 소화했다.
한웅원은 “(미국의 거장 재즈 드러머) 버디 리치(1917∼1987)의 연주를 많이 따라하며 연습한 듯한데, 전공 대학생으로 치면 잘하는 정도지, 프로의 실력은 아니다. 피날레 연주 역시 구성력이나 기술면에서 대단한 연주는 아니다”라고 했다. 연습에 몰두한 주인공의 손에서 피가 나는 장면은 옥에 티로 지적했다. “‘캐러밴’을 더블 타임 스윙, 400BPM(분당 박자 수) 속도로 친다고 해서 손에 피가 나지는 않는다. 잘못된 자세로 너무 세게 치지 않는 한. 굳은살, 물집은 잡혀도…. 영화적 과장이다.”
한웅원은 “강의평가제가 있는 한국 강단에서 사실 플레처처럼 전횡하면 잘리기 십상”이라며 웃었지만 가수 고 신해철을 떠올리며 숙연해졌다. 고인이 재즈 앨범을 냈을 때 그는 콘서트 연주자로 합류했다. 첫 합주부터 살벌했다고 한다. “연주를 시작하니 신 선배가 ‘왜 그렇게 쳐!?’ 하면서 합주실 밖으로 나가버리더라. 나머지 멤버들과 침묵 속에 남겨졌다. 식은땀이 났다.”
○ ‘러싱, 오어 드래깅?’… 드러머를 향한 공포의 주문
플레처가 앤드루에게 같은 연주를 반복시키며 다그쳐 묻는 말. 한웅원은 “최고의 공감 대사”로 이걸 꼽았다. 템포 유지는 드러머들의 영원한 과제요, 누구나 한 번 부딪치는 벽이다. “‘너무 빠르잖아’ ‘이번엔 너무 느렸어’가 몇 번 반복되면 드러머들은 멘붕이 오기 마련이다. 굉장히 사실적으로 표현됐다.”
그는 영화 중 최고의 연주로 “마지막 카네기홀 공연 중, 플레처가 앤드루 몰래 레퍼토리에 넣어둔 ‘업스윙잉’이란 신곡을 연주하는 장면”을 꼽았다. “악보도 없고 처음 듣는 곡에 저 정도로 적응해 치는 건 상당한 감각이다. 주인공의 드럼이 밴드 연주와 덜컥, 덜컥 맞는 순간엔 전율까지 왔다.”
한웅원은 몇 가지 옥에 티에도 불구하고 “‘위플래쉬’는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도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평가했다. 영화가 끝나면 삶은 스크린 이쪽에서 계속된다. “영화는 제게도 본질적 질문을 상기시켰어요. 내가 원하는 게 명예인가, 아니면 음악 그 자체인가. … 나는 왜 연주하는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