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3월의 주제는 ‘정직’]<45>단속 피하려 얌체 주차 눈살
다양한 ‘번호판 가리기’ 방법. 신문지(왼쪽)와 금속판을 덧댄 방법(오른쪽)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DB
이 널빤지들은 도심 주행차로에 설치돼 있는 불법 주차 단속용 폐쇄회로(CC)TV를 가리기 위한 ‘방패’였다. 주행차로 근처 영업점에 자재를 전달해야 하는 일이 많은 그에게 단속용 CCTV는 눈엣가시였다. 영업점 주변에 정식 주차장이 없을 때도 있었지만, 주차장에 세울 경우 물건을 전달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과 주차비가 박 씨는 아까웠다.
그는 “보통 15분 정도면 끝나는 일로 주차장을 이용한다는 게 낭비처럼 느껴졌다”며 “처음 번호판을 가릴 때는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 무섭고 부끄러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감각해졌다”고 말했다.
박 씨는 “가슴이 뜨끔한 건 물론이고, 떳떳하고 성실한 가장의 이미지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 일을 계기로 불법 주차 중 번호판 가리기를 하다 걸리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최고 300만 원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내와 아들의 ‘불법 행위 목격’ 뒤 박 씨는 회사 운영 방침을 바꿨다. 번호판 가리기 같은 부정직한 행동을 하는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직원들이 개인 부담으로 처리했던 ‘주차 위반 과태료’를 한 달에 2번까지는 회사 비용으로 내주기로 했다. 또 자재 배달 과정에서 주차비를 많이 썼다는 질책을 하지 않겠다고 직원들 앞에서 ‘선언’했다. 그 대신 직원들에게는 “번호판 가리기를 절대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교통 전문가들은 주행차로에 주차하는 과정에서 번호판을 가리는 행위의 가장 큰 문제로 ‘부정직한 운전 습관 전파’를 꼽는다. 현장 적발 외에는 찾아낼 방법이 없어 다른 평범한 운전자들에게 ‘번호판 가리기를 해도 문제없다’란 인식을 쉽게 준다는 것이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잠깐씩 주행차로에 주차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운전자들은 번호판 가리기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운전자들이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하는 것과 함께 처벌 기준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