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강원 영월의 국제현대미술관 관장인 조각가 박찬갑 선생과 친해진 것도 실은 우리 편집자가 그분의 성을 잘못 표기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편집자가 제목에서 박찬갑을 ‘반찬갑’이라고 쓴 것이다. 잡지의 배포가 끝나고 나서야 오자를 발견했으니 수습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일수록 빨리 실수를 고백하는 게 상책이어서 얼른 전화를 드렸다.
“괜찮아요.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실수도 있을 수 있지요.”
“세상에, 잡지를 다시 찍어 보내주다니 그럴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미안해서 어쩌나.”
그렇게 해서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마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분이 얼마나 배려심이 깊은 분인지 알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인연으로 끝나버렸을 것이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낭패를 보곤 한다. 익숙한 정도로 봐서 서너 번은 족히 인사를 나눈 것 같은데 도저히 이름을 떠올릴 수가 없다. 그럴 때 “안녕하세요? 저 누구누구예요”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저 누군지 기억하시겠어요?”라고 다그치는 사람이 있다.
후배는 지금도 자주 이씨와 김씨를 바꿔 부르고, 나는 여전히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잘 매치시키지 못해 당황하곤 한다. 그러나 이 약점이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과 한꺼번에 인사를 나눠서 잘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저 누구입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그 순간 이후 꼭 기억하게 된다. 그의 배려가 깊은 인상을 남겨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