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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뇌물 주고 군대 탈출하는 북한 군관들

입력 | 2015-03-12 03:00:00


주성하 기자

북한군이 스스로 와해되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군관들의 ‘탈군(脫軍) 바람’이다. 먹고살기 힘든 데다 김정은 시대 들어 군 생활은 더욱 고달파지니 사회에 빨리 나가 돈 버는 것이 최선이라 인식하는 것이다.

연대장쯤 되면 나이가 있기 때문에 정년까지 버티려고 애를 쓰지만 대대장급 이하 군관들은 생각이 다르다. 군관 출신은 노동당이나 보안부 등 권력 기관에 배치되는 데 유리하다. 군에서 힘들게 살기보다는 뇌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하루라도 빨리 얻는 것이 더 실속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당연히 군 당국은 제대를 강력히 막는다. 그래서 제대를 위한 뇌물이 공공연하게 오고간다. 40대를 넘으면 200달러 정도면 가능하지만 30대 군관은 500달러까지 주어야 한다. 군에서 매관매직이 아니라 ‘탈관탈직’이 트렌드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북한에서 500달러는 일반 4인 가정이 1년은 잘 먹고 살 수 있는 돈이다. 달러를 구경하기 어려운 초급 군관에겐 평생 만지기 어려운 거액이다.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달러가 모아지는 것도 아니고, 대출 받을 곳도 없다.

군의소에 뇌물을 주고 ‘감정제대(의가사제대)’되는 ‘우회로’도 물론 있다. 하지만 뇌물이 적게 드는 대신 사회에 나가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단점도 있다.

요즘은 군관에게 시집오겠다는 여성도 없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전엔 군관이 처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배급과 월급이 꼬박꼬박 잘 나오고 궂은일은 병사들이 다 해주기 때문에 거의 ‘사모님’처럼 살 수 있어서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엔 병사들을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게 하라고 군관들을 다그치니 군관 아내가 되면 돼지 기르기나 콩 농사 따위로 세월 다 보내야 한다. 요즘 북한에서 군관에게 시집가겠다는 처녀 대다수는 산골 농민이다. 자식에겐 농민 신분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다. 간혹 좋은 집안에 장가가는 군관도 있지만, 이는 사위를 일찍 제대시켜 간부로 밀어주겠다는 처갓집의 속셈 때문이다. 군관 가치가 땅에 떨어지니 군관학교에 자원자도 없다. 그러니 요즘은 쭉정이가 군관이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군관부터 군에서 제대하지 못해 안달이 났으니 군 기강도 말이 아니다. 북한 병사들의 목표는 오래전부터 “도둑질해먹고, 강도질해먹어도 10년 동안 영양실조만 걸리지 말자”이다. 부모들부터 그렇게 요구한다.

영양실조를 피하기 위해선 훔치는 기술보다 어떤 부대에 배치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최근에 탈북한 북한 군인 대다수가 전투부대는 편제의 70%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단 편제가 1만 명이라면 실제 병력은 7000명도 채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영양실조로 집에 치료하러 간 병사, 돈 벌어오라고 집에 보낸 병사까지 빼면 가용 병력은 더 줄어든다. 한국 국방백서엔 북한군 병력이 120만 명이라고 언급돼 있지만 탈북 병사들의 말을 들으면 전쟁 나면 60만 명은 동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와중에도 편제의 110%가 넘는 부대도 있다. 해안경비대가 대표적이다. 해안경비대는 어부 단속 권한이 있다. 어선에서 생산물의 20% 정도 뜯어내고, 안 주면 출항시키지 않는다. 그러니 해안경비대에 가면 최소한 영양실조에 걸릴 가능성은 낮다. 부모는 자식을 이런 부대에 보내기 위해 온갖 연줄을 다 동원한다. 그런데 편제 정원이 넘친다는 것은 언제든 전투부대로 쫓겨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좋은 부대에서 쫓겨나면 ‘데꼬당했다’고 한다. 좋은 부대 가려고 뇌물을 쓰고, ‘데꼬’ 당하지 않으려 뇌물 쓰다 보니 병사들부터 돈에 환장해 있다.

지난해 탈북한 한 군관은 이렇게 말했다.

“대다수 북한 병사들이 전쟁을 원합니다. 죽든지 살든지 이 힘든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거죠. 하지만 충성심이나 애국심 따위는 머릿속에서 날아간 지 오랩니다. 부하들에게 전쟁이 벌어지면 뭘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남쪽에 가서 은행을 털겠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은행은 국가가 해먹을 거니 나는 집집을 돌며 냉장고를 훔쳐 땅에 묻었다가 전쟁이 끝나면 집에 가져가겠다는 병사도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군인과 마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물론 남북의 압도적 전력차를 감안하면 냉장고를 훔친다는 북한 병사의 ‘소박한’ 욕심은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런 와중에 김정은은 최근 군에 “10월까지 미국과 전쟁할 준비를 마치라”는 지시를 하달한 뒤 부대를 돌며 “미제와 추종세력들을 걸레짝처럼 만들겠다”고 기세등등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서울 사는 나도 아는 북한군의 속살을 김정은은 알고나 있을까.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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