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의 열정이 만났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삶을 주도하며 살아갈지, 뒷짐 지고 방관할지는 순전히 자유의지에 달렸다. 그 결과 역시 자기 몫이다. 영화 ‘내 심장을 쏴라’의 원작자 정유정과 주연 배우 여진구는 둘 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삶을 살고 있다. 세대도, 활동 영역도 다르지만 일에 대한 열정 온도는 비슷한 두 사람이 인생과 ‘맞장’뜨는 법.
‘7년의 밤’과 ‘28’로 유명한 정유정(49) 작가. 그가 쓴 여러 작품이 영화화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2009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내 심장을 쏴라’가 가장 먼저 관객 앞에 선보였다. 1월 28일 개봉한 영화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생긴 정신분열증으로 6년째 정신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수명이 움직이는 시한폭탄 같은 동갑내기 친구 승민을 만나면서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와 자유의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덥수룩한 머리에 곱상한 얼굴, 놀라운 기억력을 지닌 25세의 수명은 드라마 ‘해를 품은 달’과 영화 ‘화이’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고교생 배우 여진구(18)가, 그의 삶을 변화시키는 승민은 그와 띠동갑인 이민기(30)가 연기했다. 기존의 앳된 이미지를 벗고 수명의 삶 속에서 성장통을 겪은 여진구와 수명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 청춘들에게 묵직한 위로를 건넨 정유정 작가. 언제 봐도 혼신을 다해 일을 즐기는 두 사람과의 개별 인터뷰를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여진구 믿었다” vs. “아쉬웠다”
영화를 본 소감은 어떤가요.
정유정(이하 정) 2010년, 영화보다 먼저 연극이 나왔어요. 원작을 그대로 살려서 참 재미있게 봤는데 이걸 영화로 만들기는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을 쓸 때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극적 질문을 던져놓고 침몰하는 부분에 상당한 양을 할애한 후 마지막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는데, 영화는 시간 제약이 있어서 두 가지를 다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어요. 감독이 둘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봤죠. 영화에서는 침몰 부분을 압축하고 두 친구가 직진하고 질주하는 모습에 주력했더라고요. 그런 감독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해요. 영화가 원작보다 밝게 나온 것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여진구 씨가 승민이를 떠나보내고 조명탄을 흔들면서 잘 가라고 외치는 장면이 감동적이었어요. 지금도 여운이 남아 있을 정도로요.
여진구(이하 여) 작가님에게 죄송하게도 영화 출연 제의를 받고 나서 소설을 읽었어요.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캐릭터라서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영화를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도 밝고 원작의 메시지도 잘 전달되는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다만 제 연기가 좀 아쉽더라고요. 수명이라는 캐릭터를 좀 더 이해하고 연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러워요.
수명과 여진구 씨의 싱크로율은 어떻던가요.
정 ‘여진구씨의 재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잘 어울렸어요. 여진구라는 배우를 처음 눈여겨본 건 영화 ‘화이’에 출연했을 때예요. ‘어린 친구가 배우네!’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작품을 보고 팬이 됐죠. 수명 역에 여진구 씨가 캐스팅됐을 때도 ‘생큐’했어요. 믿음이 갔거든요. 여진구 씨는 남자다운 이면에 섬세하고 여린 분위기가 있다는 걸 ‘화이’를 보면서 느꼈어요. 그걸 극대화하면 수명이와 딱 맞겠다 싶었는데 여진구 씨가 핵심을 잘 짚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 원래 성격은 수명이보다 승민이에 가까워요. 밝고 쾌활하다는 점에서요. 근데 수명이는 숨는 거 좋아하고 문제를 정면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촬영 초반에 몰입하기가 어려웠어요. 수명이의 행동에 공감이 안 돼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어요. 정신분열을 말로만 들어봤지 주변에 겪은 분도 없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어서 원작 소설에 살짝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촬영 초반에는 원작에 얽매여 있었어요. 소설 속 캐릭터에 갇혀 현실감을 잃어간다는 걸 촬영 중반에 깨달았어요. 제 안에도 수명이 같은 면이 있었던 거죠. 승민이가 수명이의 자유의지를 깨우는 과정에서 제대로 부딪혀 연기하기를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보게 됐어요. 그때부터 더 이상 숨지 말고 부딪혀보자, 상대해보자는 생각이 시작됐으니까요. 잘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제 감정에 충실하면서부터 연기하기가 편해지더라고요. 그동안 많은 작품을 했지만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감정 연기의 난도가 높아 힘들기도 했지만 많은 걸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죠.
영화를 찍는 동안 서로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한 교감을 가졌나요.
정 지난해 봄 고사를 지낼 때 여진구 씨를 처음 만났어요. 그때 여진구 씨가 ‘수명이의 속내를 읽기 위해 소설을 봤다. 수명이는 어떤 인물이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말해줄 건 하나밖에 없다. 수명이가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해서 바보가 아니다. 굉장히 똑똑하고 기억력이 좋다는 걸 염두에 두면 된다’고 조언해줬어요. 이 작품은 수명이의 성장 이야기니까 다른 말을 해봐야 혼란만 줄 것 같았어요.
1인칭 사이코패스 소설을 집필하며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드러내자’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정유정 작가.
정유정에겐 글쓰기, 여진구에겐 연기가 활공장
이 영화는 현실의 아픔을 건드리는 대사로 방황하는 청춘 남녀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그중에서도 큰 울림을 안긴 명대사로 관객들은 ‘무지개를 넘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처음엔 낯설고 두려운 일이다’ ‘숨는 놈, 대충 견디는 놈, 그런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내 인생에서 어디까지나 난 유령이었다’ ‘네 시간은 이제 네 거야. 더 이상 뺏기지 마’ ‘저에게도 활공장(滑空場·글라이더 활공 훈련을 하는 장소)이 필요했습니다’를 떠올렸다.
현재의 청춘뿐 아니라 앞으로 청춘이 될, 그리고 한때 청춘이었던 이들에게도 울림을 주는 대사가 많았다고들 합니다. 두 분에게 기억에 남는 명대사는 어떤 건가요.
정 제가 소설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본문에 있는 게 아니라 소설의 가장 앞에 있어요. ‘분투하는 청춘에게 바친다’는 문장이 있거든요. 영화에서도 그 문구를 고스란히 가져다 썼더라고요. 영화가 다 끝난 후 자막에 나오는데 저는 그 말을 가장 아껴요. 그 소설을 쓸 때 진심으로 암담한 20대를 보내는 친구들의 등을 두들겨주고 싶었거든요.
여 사실 대사가 많은 편은 아니었어요. 승민에게 영향을 받는 캐릭터라 수명이보다는 승민이 대사가 더 기억에 남아요. ‘넌 누구냐’부터 ‘여긴 정신병원치고 너무 진지해. 미친 게 좋은 게 뭔데?’ 등 많은 대사가 생각나요. 제 대사 중에는 수명이 정신보건 심판위원회에서 치료 상태에 대한 판정을 받는 마지막 장면에서 했던 ‘저에게도 활공장이 필요했습니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촬영할 때도 묘한 감정이 들었고, 특히 엔딩에 나와서 그런지 마음 깊이 와 닿았어요.
수명에게 미래로 나가기 위한 활공장은 실명 직전에도 죽을 각오로 글라이더에 몸을 실을 만큼 강한 자유의지를 보여준 승민과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두 분에게도 그런 활공장이 있습니까.
정 제 인생의 활공장은 등단이었죠. 이야기할 무대가 필요했으니까요. 발 한쪽 디딜 공간만 주어진다면 거기에 내 몸과 영혼을 모두 부려놓고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얘기를 맘껏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꿈을 이루기까지 6년이 걸렸죠.
극 중 승민처럼 자유의지대로 살고 있나요.
정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제 뜻대로 살아왔다고 자부해요. 하지만 학창 시절에는 그러지 못했어요. 부모님이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하게 하셨어요. 저는 국문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의대에 갔으면 하셨어요. 고등학교 시절 전형적인 문과 체질임에도 이과 공부를 해야 해서 무척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진로에 대한 불만이 많았어요.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지만 저희 세대는 먹고살기 위해 진로를 정하던 때라 전문직을 갖기를 원하는 엄마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어요. 엄마가 바란 대로 이과에 가서 힘든 시간을 보내다 간호대에 들어갔죠. 대학교 1학년 때도 학교를 다닐지 말지 갈등하면서 심하게 방황하다가 2학년에 올라가서야 마음을 비웠어요. 자립하고 나서 꿈을 펼치자고 자위하면서요.
여 저희 부모님은 제가 승민이처럼 제 시간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며 자유의지대로 살 수 있게 내버려두세요. 그 덕분에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과 진로를 남보다 일찍 결정할 수 있었고, 진로와 학업 문제로 힘들어하는 또래 친구들보다 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어요. 대학 입시를 앞둔 지금도 제 시간을 연기에 가장 많이 할애하는데, 제가 들인 노력과 시간보다 많은 관심을 받는 것 같아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스물다섯 살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만 이룬 것도 별로 없는, 방황하는 청춘의 상징적인 나이가 아닐까 싶어요. 수명과 승민의 나이를 스물다섯 살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겠죠. 정유정 작가가 살아냈고, 여진구 씨가 살아갈 스물다섯 살의 삶이 궁금해요.
정 20대 초반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동생들을 부양해야 했어요. 또래 친구들처럼 커피 한잔도 마음 편히 마실 수 없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이었죠. 때로 그런 삶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임종하실 때 손을 잡고 동생들을 책임지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요. 사실 제게도 수명이 같은 면이 많은데, 제 안에 뚝심 있는 자아가 생기도록 이끌어준 사람도 어머니예요. 어머니는 저를 너무나도 사랑해주셨고, 사막에 던져놔도 살아남을 수 있게끔 강인하게 키우셨어요. 힘들 때도 항상 ‘넌 내 딸이니까 할 수 있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셨죠.
여 스물다섯 살이라….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제가 그 나이가 됐을 때는 뭔가에 계속 부딪히면 좋겠어요. 승민이처럼, 작가님처럼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즐기길 바랍니다.
10대의 마지막 해를 맞은 여진구는 공부와 연기를 병행하느라 힘들더라도 늘 웃으면서 알찬 시간을 보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아날로그 감성 좋아하는 닮은꼴
두 사람은 활동 분야도 다르고 나이 차도 많이 나지만 재미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둘 다 스마트폰과 친하지 않은 것. 정 작가는 최근까지 2G폰을 쓰다 스마트폰으로 바꿨고, 여진구는 지금도 2G폰을 쓰고 있다.
대세인 스마트폰을 멀리하면 불편하지 않나요.
정 2G폰을 갖고 다닐 때 할머니 같다는 소리를 하도 들어서 스마트폰으로 바꿨어요. 제 나이 때는 그런 말에 상처 받거든요(웃음). 근데 2G폰보다 스마트폰이 더 불편하더라고요. 급할 때 통화하고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걸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는데 갑자기 기능이 많아지니까 적응이 안되더라고요. 매뉴얼도 잘 모르겠고요. 스마트폰을 잘 들여다보지 않아서 간혹 오해를 사기도 해요. 카카오톡 메시지에 바로 답하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여 저도 불편한 점은 별로 없어요. 친구들이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는데 고맙게도 저를 끼워주거든요(웃음). 집에 있을 때는 컴퓨터를 하기보다 주로 잠을 자는데, 집에만 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어쩌다 시간이 날 때는 밖을 쏘다니거나 친구들을 만나죠.
자기 일에 열정적인 모습도 닮았어요. 정 작가는 발품을 팔아 살아 있는 스토리를 만드는 소설가, 여진구 씨는 연기뿐 아니라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으로 유명하더군요.
정 소설을 보면 완벽주의자일 것 같다고들 하는데 평소에는 덜렁거리고 덤벙대요. 제 성격을 잘 아니까 글을 쓰면서 놓치는 게 없는지 자꾸 의구심을 가져요. 그러다 보면 허술하고 석연치 않은 빈틈이 눈에 띄니까 발로 뛰어다니며 그걸 메우는 거예요.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읽어도 시비를 걸 수 없게요. 일례로 ‘내 심장을 쏴라’를 쓸 때는 시력을 잃는 승민이의 감정이 어떨지 감이 오지 않아서 한밤중에 인근 산을 수도 없이 올랐어요.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거기 계신 분들을 몇 달간 취재했고요. 그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그 정도의 수고는 마땅히 감수해야죠.
여 중학교 때는 공부하기가 수월했는데 고등학교 때는 만만치 않아요. 교과 수준이 갑자기 높아지니까 힘들어요. 수업을 빠질 때가 많다 보니 틈틈이 공부해도 따라잡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처음에는 놀랐어요. 학습 내용이 갑자기 어려워지고 성적이 가끔 떨어져서요. 한동안 과외 공부를 한 적도 있는데 부족한 학업은 주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보충하고 있어요.
올해를 어떻게 보낼 건가요.
정 인간의 가장 밑바닥이 드러나는 1인칭 사이코패스 소설을 쓰고 있어요. ‘7년의 밤’을 쓸 때는 입체적 여성 캐릭터를 만드는 게 목표였고, ‘28’을 집필할 때는 다중 플롯 작법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더 어려운 도전이 될 것 같아요.
여 올해는 10대의 마지막이라 아쉬우면서도 알차게 보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돼요. 공부와 연기를 병행하느라 힘들 수도 있지만 한시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늘 웃으면서 지냈으면 좋겠어요. 시간 여유가 생기면 세계를 여행하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도 체험해보고 싶어요.
글·김지영 기자|사진·조영철 홍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