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심연/제임스 팰런 지음·김미선 옮김/260쪽·1만3500원·더 퀘스트
바야흐로 정신장애가 안방과 극장을 점령한 시대다. 전 세계가 기다리는 영국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 셜록 홈즈는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고, MBC 드라마 ‘킬미 힐미’의 차도현은 해리성 정체장애(다중인격)가 심각하다. 주인공이 이 정도면 악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정신장애를 가진 악당으로는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대표적이다. 대중은 그들을 ‘사이코패스’라 부른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이자 성공한 신경과학자인 제임스 팰런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스스로를 사이코패스라고 털어놨다.
이 책의 원제는 ‘사이코패스의 내면(The Psychopath Inside)’이다. 한국어판 제목인 ‘괴물의 심연’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서 ‘선악을 넘어서’ 속 한 구절(‘괴물의 심연을 바라볼 때 심연이 당신을 바라보지 않도록 주의하라’)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 제임스 팰런은 15년 동안 우리가 흔히 ‘괴물’이라 부르는 사이코패스의 뇌를 연구하다 도리어 자신의 뇌에서 그 ‘괴물’을 발견한 인물이다. 그는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은,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고 무자비하며 교활한 살인자들의 뇌를 분석하며 사이코패스의 뇌가 갖는 공통 패턴을 탐색했다. 저자는 2005년 10월 정작 자신의 뇌가 그 패턴에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저자는 혼란에 빠진다. 타인의 것도 아닌 자신의 뇌를, 연구결과의 신뢰도를 낮추는 반례로써 추가해야 할까.
이 책은 ‘사람의 행동과 성격이 타고난 유전자에 의해 80%가 만들어진다’고 믿던 저자의 결정론적인 가치관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리고 다시 어떻게 재구축되는지를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이다. 저자의 결론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사이코패스는 타고난다. 하지만 ‘나쁜 사이코패스’는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저자는 책에 들어가기에 앞서 부모에게 자신이 잘 자라도록 보살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사이코패스는 문화와 인종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현재 인구 중 약 2%가 사이코패스로 알려져 있다. 만약 사이코패스가 인류 전체에 명백한 해악이라면 진화 과정 중 도태돼 사라졌어야 옳다. 저자는 이 점을 근거로 사이코패스가 인간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음을 역설한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선천적으로 결여된 탓에 냉철한 결단력을 가질 수 있고, 스트레스에 무감각한 특성 때문에 급박한 상황에서도 과감한 배팅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사이코패스라는 것.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이 이런 ‘성공적인’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성공적인’ 사이코패스가 관심과 올바른 보육에 의해서만 만들어졌음에 주목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범죄자의 길을 걷게 된 사이코패스들은 공통적으로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비단 사이코패스가 아닌 다른 평범한 아이들에게도 이 같은 깊은 관심과 올바른 보육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이우상 동아사이언스기자 ido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