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유배지 답사기/박진욱 지음/424쪽·1만9500원·알마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철부지의 해외 여행기’(1869년)에서 이탈리아 폼페이를 둘러보고 “정적에 묻힌 죽은 자의 도시를 거닌다는 것,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폐허가 된 거리를 어슬렁댄다는 것은 기묘하고 멋스러운 유희일 수 있다”고 적었다. 조선시대 남해 유배지로 떠나는 여행도 어떻게 보면 이렇듯 기묘한 유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볼 때 한없이 아름다운 풍광을 뽐내는 한려수도가 누군가에게는 고통과 회한에 젖은 눈물의 바다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선비들의 발자취를 따라 남해 곳곳을 유랑하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생하게 포착했다. 이를테면 서포 김만중(1637~1692)이 유배를 떠난 경남 남해군 노도(櫓島)를 찾았을 때 이야기가 그렇다. 이틀 동안 낫질을 해가며 겨우 찾아낸 김만중의 조그마한 비석을 보면서 저자는 김만중의 숙적 류명현을 떠올린다.
숙종 때 이조판서까지 오른 류명현은 남인의 우두머리 허적과 윤휴를 탄핵한 김만중을 제거하는데 성공했지만 자신도 유배를 당해 결국 이 섬에서 눈을 감았다. 김만중이 세상을 떠나고 9년이 지난 뒤였다. 조정에서 오랜 세월 싸우던 두 사람이 결국은 머나먼 남해의 외딴섬에 함께 묻힌 것이다. 저자는 “한양 세도가의 한평생 영화와 몰락이 여기 한 개의 돌덩이로 남았다. 이틀에 걸쳐 그토록 헤매었던 것은 한 개의 돌멩이였다. 나는 돌멩이를 한 번 만져보고는 우물가 동백 그늘로 들어갔다”고 적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