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가 그제 대(對)국민 담화에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사정(司正)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이 총리는 “정부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부패 사슬을 끊어낼 것”이라며 구체적인 척결 대상으로 방위산업 비리와 해외자원개발 비리, 일부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 공직기강 해이를 거론했다. 그러나 이 총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역대 정권마다 출범 초기에 대대적인 사정에 나섰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이렇다 할 사정 수사가 없었다. 박 대통령은 ‘부패와의 전쟁’을 발표하기 전날에 이 총리와의 주례 회동에서 부패 척결을 강하게 주문했다. 박 대통령이 당정청의 협조를 강조했지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 총리의 담화 발표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담화 발표 사실도 2시간 반 전에야 언론에 공개할 만큼 갑작스러웠다. 그 배경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 분분하다.
이 총리는 충남도지사 시절에 이명박 정권의 세종시 계획 수정 움직임에 반발해 자진 사퇴한 뒤 정부의 집중적인 사찰을 받아 혈액암에 걸렸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부패와의 전쟁’은 이 총리의 뜻이라기보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크게 실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담화에 대해 이 전 대통령 측은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정 수사의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에 따라 전현 정부의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
이전 정권 비리에 대한 사정 드라이브는 정치 보복 논란을 빚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각종 비리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의미와 함께 공직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청와대가 집권 후반기에 국정 동력을 살리는 차원에서 사정 수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 부패와의 전쟁은 다목적 카드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한 사정은 집권 세력에 득보다는 실이 컸다는 과거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