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태동-절정기 거쳐… 케이팝 3.0시대
2012년 디지털 싱글 앨범 ‘얼마나 좋을까’로 데뷔한 루나플라이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다. 데뷔 후 매년 10여 차례 해외 공연을 갖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메이드 바이 유 2014 루나플라이 인 유럽(made by you 2014 lunafly in Europe)’이란 이름으로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 등 유럽 4개 도시에서 투어를 벌였다. 공연마다 수백 명의 팬이 루나플라이의 노래를 한목소리로 따라 했다.
루나플라이 소속사인 내가네트워크 관계자는 “4월 멕시코 페루 브라질 등 라틴투어도 열 정도로 해외 각국에서 인기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며 “아르헨티나 등 아직 공연을 열지 못한 나라의 팬들이 콘서트를 해달라는 내용의 ‘협박성’ 메일을 수백 통씩 보낼 정도”라고 말했다.
유럽을 넘어 남미로 번지는 케이팝
동아일보는 스타트업 JJS미디어와 함께 대표적 한류 콘텐츠인 케이팝의 글로벌 인기 지형도를 분석했다. JJS미디어는 ‘마이뮤직테이스트(MyMusicTaste)’라는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 팬들이 가수의 콘서트를 요청하면 이 수요를 분석해 공연을 기획한다. 가수가 콘서트를 열면 팬이 모이는 게 아니라 팬이 모이면 가수가 가서 공연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전 세계의 케이팝 공연 수요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분석 결과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확산된 케이팝이 남미지역에서의 수요도 꾸준히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 슈퍼주니어의 공연 요청이 가장 많은 도시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 빅뱅의 인기가 높았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조사연구팀의 박성현 박사는 ‘2014년 한류의 동향과 전망’ 보고서를 통해 “케이팝의 인기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중남미로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무명가수? 해외에서는 대스타!
한국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인기가 높은 가수들도 상당수였다. 전 세계 32만여 건의 케이팝 가수 공연 요청을 분석한 결과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가수들이 오히려 유럽과 동남아에서 연속 공연을 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남성 5인조 가수 뉴이스트는 지난해 11월 유럽 5개국 투어를 마치고 귀국했다. 프랑스, 핀란드, 폴란드, 루마니아, 이탈리아 총 5개국에서 ‘뉴이스트 리스폰스 유럽 투어(NU’EST Re:Sponse Europe Tour)’ 라는 콘서트를 열고 현지 팬들을 만났다. 공연마다 수백 명의 팬이 몰렸다. 뉴이스트가 콘서트 요청을 받은 전 세계 도시는 미국 뉴욕,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 지금까지 185곳이다.
뉴이스트 소속사 플레디스 측은 “현지에서 팬들을 만나기 전에는 사실 뉴이스트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하기 어려웠다”며 “한국어로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고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며 뉴이스트를 반기는 팬들을 보고 모두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SM은 ‘미국과 동남아’ JYP, YG는 ‘유럽’ 인기몰이
SM YG JYP 등 국내 대표적인 연예 기획사의 소속 가수마다 인기 국가는 차이를 보였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은 주로 미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인기가 높았다. 254개 도시에서 총 2만6030건의 공연 요청을 받은 엑소의 경우 “캐나다 밴쿠버에서 콘서트를 열어달라”는 요청이 가장 많았고 이어 미국 뉴욕, 호주 시드니, 미국 애틀랜타 순이었다.
여성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는 유독 동남아시아에서 공연 요청이 많았다. 소녀시대는 총 165개 도시에서 3026건의 요청을 받았는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태국 방콕,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요청이 대부분이었다. SM 관계자는 “소녀시대는 2011년 한국 여성 가수 최초로 싱가포르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고, 대만 콘서트에서는 콘서트 3회 동안 총 3만1000여 명의 관객이 몰려 해외 걸그룹 최다 관객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반면 YG와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은 주로 유럽 팬들의 공연 요청이 많았다. YG 소속인 빅뱅, 2NE1, 에픽하이 등의 공연 요청이 총 202개 도시에서 있었는데 이 중 상당수가 핀란드, 프랑스, 포르투갈 등 유럽권이었다. YG 측은 “2012년 12월 빅뱅이 영국 런던에서 공연했을 당시에도 프랑스, 독일 등 인접 유럽 지역의 팬들까지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말했다. 가장 공연 요청이 많은 가수는 빅뱅으로 총 189개 도시에서 5600여 건의 공연 요청이 있었다.
프랑스 파리, 핀란드 헬싱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헝가리 부다페스트, 브라질 상파울루…. JJS미디어의 ‘마이뮤직테이스트’를 통해 엿본 한국 케이팝의 인기 지형도는 전 세계를 아울렀다.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과 엑소, 블락비 등은 유럽 등 해외 국가에서도 ‘케이팝 돌풍’을 이끌었다. 루나플라이, 뉴이스트 등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덜한 그룹이지만 유럽 및 남미에서는 투어 콘서트를 열 정도로 케이팝 돌풍의 숨은 주역인 경우다.
▼ “공연 해줘요” 1년새 전세계 40만명 가입 ▼
‘주문형 공연’ 신선한 역발상
스타트업 JJS미디어 공연 요청 플랫폼 ‘마이뮤직테이스트’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실행 화면. 글로벌 케이팝 팬들은 이 앱을 통해 공연을 신청할 수 있다. 스마트폰 화면 캡처
스타트업 JJS미디어의 공연 요청 플랫폼 ‘마이뮤직테이스트’에는 지금까지 전 세계 40여만 명이 가입했다. 지난해 초 서비스를 시작한 뒤 불과 1년여 만에 이룬 성과다. 회원 10명 중 9명은 해외 거주자로 케이팝 가수들의 글로벌 인기 지형도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넥슨 개발자 출신 이재석 대표와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정보통신기술(ICT) 개발자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JJS미디어는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의 정보를 수집한다. 사실상 전 세계적인 ‘인기투표’인 셈이다. 가수가 공연할 곳을 정하면 팬들이 찾아오는 공연이 아니라 팬들이 콘서트를 요청하면 가수가 공연을 열어주는 역발상으로 공연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외국 가수의 내한 공연이나 국내 가수의 해외 공연은 일부 가수만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관객 수요를 예측하기 어려운 탓이다. JJS미디어 측은 “공연기획사들은 지금까지 공연을 기획했다가도 판매율이 저조하면 콘서트를 아예 취소하거나 공연의 질을 대폭 낮춰 팬들에게 실망감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며 “정확한 수요와 공급을 예측해 공연을 여는 것이 JJS미디어가 담당할 역할”이라고 말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