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개발 계획, 영동대로에 무슨 일이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일대는 각종 개발과 광역철도·도로망 건설 등이 제각각 추진되면 최소 20년 이상 도로를 파고 다시 메우는 일이 반복돼 강남 일대에 극심한 혼잡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한국전력 부지를 개발할 때 코엑스와 한전 부지를 연결하는 지하공간을 개발하고 광역철도 환승터미널, 쇼핑몰, 지하주차장 등의 개발을 한꺼번에 하자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이런 현상이 작은 공사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서울 강남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영동대로(650m).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2호선 삼성역에 이르는 영동대로를 사이에 두고 코엑스와 옛 한국전력 부지(7만9345m²)가 마주하고 있다. 이 지역은 강남 도심의 핵심 지역인 데다 최근 각종 개발 호재가 터지면서 부동산업계에 ‘블루칩’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잇따라 추진될 대형 철도·도로망 건설 계획으로 인해 오히려 난개발, 중복투자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각각 추진 중인 영동대로 지하공간 개발을 ‘원샷’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개별사업을 위해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땅을 파헤칠 것이 아니라 첫 공사를 시작한 뒤 다른 사업을 한꺼번에 진행하자는 것이다.
서울시는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따라 코엑스 주변과 한전 부지∼서울의료원·옛 한국감정원∼잠실종합운동장까지 이어지는 72만 m²가량을 ‘국제교류복합지구’로 조성한다. 앞서 코엑스는 늘어나는 방문객을 위해 얼마 전 지하쇼핑몰의 공간을 10% 늘리는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를 마쳤다.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사옥이 들어서는 한전 부지에는 지하 6층, 지상 115층(571m) 규모의 건물이 들어선다. 송파구에 있는 123층의 제2롯데월드(555m)보다 8개층이 낮지만 16m 더 높은 국내 최고 높이의 빌딩이다. 바로 옆에는 62층짜리 업무시설 2개동도 함께 들어선다. 숙박·문화시설, 쇼핑몰 등이 입점하는 복합건물로 조성된다. 1만5000m² 규모의 전시 컨벤션 시설이 들어서 길 건너 코엑스와 함께 마이스(MICE) 산업의 핵심 공간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이 같은 내용의 ‘개발 구상과 사전 협상제안서’를 1월 서울시에 냈다. 현재 제안서는 한 차례 반려돼 보완 중이지만 규모나 입점 시설 등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조만간 제안서가 다시 접수되면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협상조정협의회를 만들어 현대차그룹과 사전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교통·환경영향 평가, 경관·건축심의 및 인허가 절차도 거친다. 이르면 내년 하반기에 첫 삽을 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형 프로젝트가 많은 만큼 광역대중교통 등 교통인프라가 확충돼 이 일대의 접근성이 한결 좋아진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3개 노선과 ‘고속철도(KTX)’ ‘지하철 9호선’ ‘위례∼신사선’ ‘U-스마트웨이’ 등 삼성역을 경유하거나 코엑스 근처를 거쳐 가는 7개 노선이 이미 확정했거나 검토 중이다. 다만 일부 사업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나 추진 주체가 결정되지는 않았다.
현재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노선은 GTX. 3개 노선 중 경제적 타당성이 확보된 ‘일산∼삼성∼동탄’ 구간 중 ‘삼성∼동탄’은 6월 전 기본계획 수립이 마무리된다. ‘송도∼청량리’ ‘의정부∼금정’ 등도 사업계획을 보완해 조만간 노선별로 분리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KTX ‘평택∼수서’ 노선도 올 하반기에 공사가 완료된다. 이후 삼성역을 거쳐 청량리∼성북∼의정부까지 연장되는 노선이 추진된다. 서울의 주요 거점이 30분 내 접근이 가능해진다. 지하철 9호선 신논현∼코엑스∼종합운동장 노선은 계획된 노선 중 가장 빠른 3월 28일 개통을 앞두고 있다. ‘위례∼신사선’ 역시 삼성역을 경유하고 ‘U-스마트웨이’(상계동∼대치동) 공사도 영동대로를 지하로 거쳐 간다.
분리 개발 대신 ‘원샷 개발’
전문가들은 영동대로에서 장기간 반복되는 공사 때문에 이 일대 주민들의 불편이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한전 부지를 개발할 때 다른 개발 계획을 원샷으로 개발하자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GTX, KTX, 지하철 9호선 등 사업별 노선별로 여러 번 공사를 하지 말고 충분히 사전 검토를 해 개발 시기와 방법을 결정한 후 조정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복 굴착이 없어지고 예산, 공사 기간, 공사 면적을 최대한 줄여 주민 불편도 최소화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공사를 필요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모아 두었다가 한 번에 해 예산 낭비도 줄이고 시민불편도 해소하는 게 일반적이다.
원샷 개발이 이뤄지면 삼성역 리모델링 공사도 탄력을 받는다. 삼성역은 하루 14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광역철도망의 노선별 환승 거점 역이다. 현재 지은 지 40년이 넘어 승강장과 연결통로가 좁아 혼잡도가 높다. 철도 노선이 완공되면 이용객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또 영동대로 지하 일부 공간을 주차장으로 활용하면 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로 없어지는 탄천변 주차장을 대체할 수 있어 주차난도 한 번에 해결이 가능하다. 현재 영동대로변에는 백화점이나 전시장, 공항터미널을 찾는 차들의 불법 주정차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재민 교통영향분석개선대책협회 회장(교우ENG 대표이사)은 “사업의 우선순위나 각 노선의 특성, 그리고 이 지역이 갖고 있는 도시기능을 고려해 노선을 효율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종합적인 계획을 우선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 인터뷰
“영동대로는 서울의 얼굴입니다. 지금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20년간 공사만 하는 누더기 도로가 될 겁니다.”
영동대로 ‘원샷 개발’을 제안한 신연희 강남구청장(사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리고 거침이 없었다. 사실 광역철도·도로가 7개나 지난다면 강남구로서는 호재다. 하지만 신 구청장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그는 “지금도 수년째 ‘파헤쳤다, 덮었다’를 반복하는 도로 때문에 주민들의 불편만 가중되고 있다”며 “사업별로 그때마다 나눠서 할 것이 아니라 한 번에 공사를 하면 예산, 공사기간, 행정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발된 영동대로 지하공간에는 광역철도 환승터미널과 쇼핑몰, 지하주차장 등을 입점시키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그는 “지하공간 개발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주체가 아직은 불명확하다”며 “우선 한 번에 지하공간을 개발한 다음 그 비용을 나중에 사업 주체별로 청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강남구는 이런 계획을 서울시에 제안했다. 박원순 시장도 직접 만난 자리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고 전했다. 신 구청장은 “박 시장이 ‘맞다. 충분히 공감한다’는 말을 하더라”며 “무역협회 국무총리실 국토교통부와 협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문제는 역시 돈이다. 한 번에 개발하면 장기적으로 전체 사업비용은 아낄 수 있지만 초기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한전 부지를 인수한 현대자동차그룹이 개발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신 구청장은 아직 신중한 모습이다. “현대차가 투자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은 되겠지만 아직 ‘하라, 마라’라고 할 단계는 아니다”며 “민자가 됐든 국가사업이 됐든 협의체를 구성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