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동반 모임에 참석한 남편이 음식점 내부를 연신 두리번거리자 아내가 테이블 밑에서 정강이를 찼다. “촌스러운 짓 그만해.”
아내는 집에 돌아오며 남편을 타박했다. 걸신들린 듯 먹어대는 그의 옆에 앉아 있는 게 바늘방석이었다는 것이다. 잘 먹는 게 뭐가 창피하다는 것인지.
사실, 아내가 화를 내는 이유는 남편의 태도나 식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의 자존심이 상해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녀가 접해보지 못한 낯선 문화를, 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을 보고는 소외감을 느꼈을 수 있다.
원론적으로 문화란 개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며, 이를 수직 서열화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현실에선 적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취향을 우월함의 과시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 이른바 ‘수준’으로 차별화하려는 것이다. 물론 문화자본이 돈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저서 ‘구별짓기-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에서 고급이라는 상징을 얻은 것들이 저급으로 낙인찍힌 것들에 대해 상징 폭력을 가한다고 지적했다. 높은 수준으로 인식되는 것은 추앙을 받는 반면 그 외의 것들은 ‘싼티’ 혹은 ‘촌티’ 같은 경멸의 대상이 된다. 그런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준이 필요하다.
수준 있는 문화와 취향에 대한 여성들의 천착은 일상에 걸쳐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족 모임에서 매형이 처남댁한테 “있어 보이게 차려입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가 아내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었다면 이는 단순한 질투의 차원만은 아니다.
그러니까 여성의 취향에 관한 한, 각별한 처신의 지혜가 필요하다. “무조건 당신이 최고”라고 치켜세워 봐야 약발이 오래가지 않을 테고, 반대로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고 무시할 일은 더욱 아니다.
이 정도면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당신은 뭘 해도 잘 어울리지만 지금으로도 충분하다”는.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