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공감백서 맞아, 맞아!]리더 분노 폭발이 두려운 부하직원
상사의 분노가 두려운 직원들
제조업체에 다니는 30대 초반 이명재(가명) 씨는 직속 상사인 같은 팀 과장이 수화기를 들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런 주문을 왼다. 평소 과장이 다른 팀 직원이나 상사와 업무 관련 통화를 하고 난 뒤엔 쌍욕으로 혼잣말을 하며 화를 내기 때문이다.
이 씨는 “조용하고 묵묵히 일하는 스타일인데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전화를 받으면 돌변한다”며 “하루에 한 번씩 ‘버럭’할 때마다 내 가슴이 철렁하고 뒷목이 뻐근해진다”고 말했다.
○ ‘버럭 상사’, 40대 남성이 많아
‘버럭 상사’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직장인 회원 628명을 대상으로 e메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직장에 버럭하는 상사·동료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체의 82%가 ‘있다’고 답했다. ‘답변자 본인도 화를 참지 못하고 분출한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40.6%가 ‘그렇다’고 털어놨다. 또 ‘버럭 상사’의 연령대는 40대가 38.6%로 가장 많았고 이어 30대(32.0%) 50대(22.1%) 20대(4.9%) 60대(2.3%) 순이었다. 성별로는 남성(77.3%)이 여성(22.7%)의 3배 이상이었다.
이들은 왜 화를 쏟아내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비공식적인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유통업체에 다니는 30대 워킹맘 정모 씨는 최근 자신에게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얼마 전 타 부서의 직원에게 업무를 재촉하는 전화를 걸었다가 핀잔만 듣자 분을 이기지 못한 채 전화기를 집어던지고 휴지통을 걷어찬 뒤 사무실을 뛰쳐나왔기 때문이었다.
정 씨는 “애를 낳고 복직해 새 업무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데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애를 봐주는 시어머니의 잔소리 때문에 폭발 직전이었다”며 “돌이켜보니 어디서든 고민을 털어놓을 기회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일터와 가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비공식적인 대화가 절실했다는 얘기다.
○ 조직 병들게 하는 ‘버럭 리더십’
리더들의 과도한 분노 표출은 조직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제조업체에 다니는 30대 김모 씨(여)는 걸핏하면 화를 내는 임원 밑에서 일한 뒤부터 자주 한의원을 찾는다. 김 씨는 “임원이 화낼까봐 전전긍긍하다 소화가 안 되고 뒷목이 뻣뻣하다며 한의원에 가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다”고 전했다.
조직의 역량이나 소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인크루트 조사에서 ‘버럭 상사·동료와 대화해야 할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질문에 ‘되도록 짧게 대답한다’가 38.4%로 가장 많았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상사와의 회의에서는 논의가 짧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리더의 비합리적 처신이 ‘땅콩 회항’ 사건처럼 SNS를 타고 퍼져 기업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 각 기업 직원들이 익명으로 사내의 ‘뒷담화’를 공유하는 ‘블라인드 앱’, ‘대나무숲 앱’ 등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들이 이미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문제가 심각한 리더의 소문은 회사 밖에까지 널리 퍼지고, 결국 이런 처신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