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숙 아버지. 우데 그리 갑니까.” “아부지, 우리도 델고 가면 안됩니까”
5년 만에 돌아온 연극 ‘경숙이, 경숙 아버지’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가족을 버리고 혼자 피난길을 떠나는 경숙 아버지와 남겨진 경숙이 가족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경숙 아버지는 여느 아버지들과는 사뭇 다르다. 가장이란 이름에 짓눌린 무게감, 가족에게 헌신하는 책임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전쟁이 일어났는데도 피난은커녕 집이 전 재산이란 이유로 아내와 어린 딸에게 집을 지키라 하고, 자신만 혼자 피난길을 나서는 ‘철없는 아버지’다. 헌데 희한하게 밉지 않고, 뭔가 짠하다. 경숙 아버지의 비상식적인 ‘기행’에는 근현대사의 아픔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힘은 극단 ‘골목길’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다. 경숙이 역의 주인영과 경숙 아버지 역의 김영필, 경숙 어머니 역의 고수희·권지숙, 불륜녀 자야 역의 황영희·강말금, 꺾꺽이 삼촌 역의 김상규 등 한명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모든 배우들의 연기 내공이 상당하다. 굳이 베스트를 꼽자면 경숙 아베 역의 김영필, 경숙이 역의 주인영이다. ‘버릴 게 없는 연기’가 무엇인지 두 배우는 공연 내내 몸짓, 목소리, 표정으로 말한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