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정유사 이사회 의장 재직때… 정치자금-뇌물 관련 의혹 불거져
최악 가뭄-경제난으로 민심 악화… 재선 반년만에 지지율 23%로 급락
“호세프 대통령이 임기를 못 채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
“현재 브라질 경제는 ‘거인의 몰락’과 유사하다.”(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호세프 대통령의 위기는 브라질 국영 정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비리 의혹에서 비롯됐다. ‘브라질의 심장’으로 불리는 페트로브라스는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차지하며 직원만 8만 명이 넘는 남미 최대기업. 하지만 부패 스캔들과 저유가 등으로 국내외 투자가 줄줄이 중단되면서 최근 회사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까지 떨어졌다. 바로 직전 룰라 정권의 에너지부 장관 출신인 호세프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이 회사의 이사회 의장을 지냈다.
페트로브라스의 비리 의혹이 수면 위에 떠오른 시점은 지난해 10월. 2007년 룰라 정권이 이 회사에 신규 유전개발권을 독점으로 주는 대신 유전설비의 85%를 국산품으로 쓰도록 하는 과정에서 국내 건설사 및 납품사로부터 비자금을 조성해 대대적 로비를 펼치는 발판이 됐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호세프와 맞선 제1 야당 사회민주당의 아에시우 네베스 대표는 “호세프도 페트로브라스로부터 정치자금을 상납 받았다”고 주장했다.
호세프는 꼬리를 무는 의혹과 야권 공세 속에서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지 한 달 만인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검찰 조사에서 페트로브라스의 상납 비리가 드러나면서 곤경에 빠졌다. 한 전직 임원이 “페트로브라스가 2004년부터 8년간 약 81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이 중 2100억 원이 노동자당으로 흘러갔다”고 말한 것. 이달 6일 대법원도 페트로브라스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정치인 54명에 대한 조사를 승인했다. 뇌물 조성이 한창일 때 이사회 의장을 지낸 호세프에 대해서도 수사해야 한다는 국민적 분노도 높아갔다.
설상가상으로 최악의 가뭄과 저유가가 부른 경제난도 심각하다. 지난해 0.1% 성장률을 기록한 브라질 경제는 수년째 가뭄으로 커피 등 주요 농산물 작황이 나빠졌고 전력 생산의 70%를 담당하는 수력발전도 차질을 빚으면서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브라질 통화인 헤알화의 가치는 1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물가상승률은 10년래 최고치로 올랐다. 정부 부채는 브릭스 5개국 중 가장 높은 GDP의 66%여서 정부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기도 어렵다.
브라질의 대통령 탄핵은 하원의원 513명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노동자당을 비롯한 연립여당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당장 탄핵 가능성은 낮지만 호세프가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브라질 의회는 1992년 측근 비리에 연루된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대통령을 탄핵시킨 전력이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