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간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을 지낸 홍파 스님. 불교계의 마당발이다. 글로 옮기기 어려운 비사들이 스님 품 속에 가득하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얼마 전 입적한 법전 스님이 처음이었고, 의현 녹원 월주 고산 정대 법장 지관 스님…. 현재 자승 스님까지 16명이네요. 허허.”
17일 만난 홍파 스님(72·대한불교관음종 총무원장)의 입에서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종단협) 역대 회장 스님들의 법명이 술술 나왔다. 홍파 스님은 10일 종단협 이사회에서 1984년 이후 줄곧 맡아온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뒤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종단협은 불교 종단들의 사회적 활동과 교류를 위해 설립된 단체로 조계종, 천태종, 태고종, 진각종 등 27개 종단이 소속돼 있다. 홍파 스님은 무려 31년간 16명의 회장을 보필했다. 그래서 별명이 ‘한국 불교계의 산증인’ 또는 ‘불교계의 마당발’이다.
1961년 관음종의 전신인 불입종(佛入宗) 태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동국대 불교학과에 다니면서 대학생불교연합회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수행과정에서 경봉, 성철, 청담, 향곡 스님 등 내로라하는 조계종 고승들을 찾아 가르침을 받았다. 1966년 재가신자 13명과 경북 문경 김용사에 주석하던 성철 스님을 만난 사연이 흥미롭다. “성철 스님이 해인총림 방장이 되기 전 ‘철 수좌’로 불렸어요. 그때 만나 뵈려면 3000배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막 나올 때였죠. 그날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절하고 법담을 나눈 기억이 납니다.”
홍파 스님은 “‘눈앞에 불상이 있지만 이를 믿는 것이 아니다. 내가 시작이고 끝이다. 믿는 것, 보는 것 모두 나’라는 철 수좌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덧붙였다.
홍파스님이 지나치게 ‘친 조계종’이라는 종단협 일각의 비판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역사성이나 영향력에서 조계종이 중심일 수밖에 없어요. 올해 재가신도까지 참여해 시작한 조계종 대중공사(사찰 내 대소사를 논의하는 모임)는 진작 열려야 했어요. 조계종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열매를 맺어야 다른 종단으로 확산되고, 전체 불교도 바뀔 수 있습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