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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권순활]이재용 삼성과 ‘제3의 창업’

입력 | 2015-03-19 03:00:00


권순활 논설위원

1987년 12월 삼성 총수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이듬해 3월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민관(民官) 전문가들이 참여해 2009년 발간한 ‘한국경제 60년사’는 이 회장이 혁신에 착수한 1988년을 ‘한국의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패러다임 전환기에 들어선 첫해’로 기술했다. 창업보다 어렵다는 수성(守成)을 넘어 부친인 이병철 창업자의 숙원인 극일(克日)까지 이뤘으니 당시 삼성 세대교체는 상당한 경제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 회장이 작년 5월 쓰러진 뒤 경영을 책임진 이재용 부회장에게 지난 열 달은 잠을 설치는 날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회장의 투병 시점과 맞물려 간판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실적이 나빠지면서 심리적 부담이 더 컸을지 모른다. 지난해 이 부회장의 나이도 아버지가 제2의 창업 기치를 내걸었을 때와 같은 46세였다.

‘이건희 삼성’은 독자기술 개발과 혁신으로 선진 외국기업을 추격해 따돌리는 데 주력했다. 반면 ‘이재용 삼성’은 유망한 해외기업 인수를 통한 신성장 동력 발굴에 박차를 가해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지난 10개월 동안 삼성은 미국의 루프페이, 브라질의 심프레스 등 8개 외국기업을 사들였다. 비주력사업의 철수도 눈에 띈다.

새로운 전략에 대해 삼성의 글로벌 위상과 환경 변화에 따른 바람직한 선택이라는 긍정론과, 너무 앞뒤를 재면서 쉬운 길을 가는 게 아니냐는 부정론이 엇갈린다. 경영 판단의 적부(適否)는 결국 결과가 말해준다. 동일한 결정이라도 성공하면 ‘과감’ ‘신중’이란 찬사가, 실패하면 ‘무모’ ‘소심’이라는 비난이 따르는 게 세상의 평판 아니던가.

삼성의 대주주 지분 정리나 공식 경영권 승계 작업에는 여전히 변수가 적지 않다. 이병철-이건희 시대를 풍미한 강진구 경주현 김광호 윤종용 황창규 진대제 같은 스타들에 비해 현재 전문경영인들의 무게감은 다소 약하다. 삼성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까지 급변해 이 부회장이 처한 여건이 녹록하진 않아 보인다.

한국 사회에는 삼성이라면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내고 흠집을 내려는 세력이 존재한다. 반면 다른 기업보다 삼성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박수’ 일변도이거나 과공(過恭)을 하는 정반대의 모습도 눈에 띈다. 다른 대기업들도 비슷하지만 삼성은 대주주 일가는 물론이고 총수 핵심 측근들에 대한 외부의 비판에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 부회장이나,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부회장, 장충기 사장 등의 참모들은 회사 이미지를 훼손하는 악성 허위 사실에는 원칙대로 대처하더라도 ‘쓴 약’ 같은 조언에는 대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지속적인 장기 발전은 쉽지 않다고 한다. 숱한 왕조가 명멸한 중국에서도 3대 연속 명군(名君)은 청나라 시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의 ‘강건 성세(盛世)’ 정도를 제외하면 드물다. 이병철, 이건희라는 걸출한 두 경영자에 이어 실질적인 세대교체가 시작된 ‘이재용 삼성’은 또 한 번의 도약이냐, 아니면 추락이냐의 중대한 기로에 섰다.

한때 미국에서는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말이 유행했다. 나는 삼성과 한국의 이해(利害)가 반드시 일치한다고는 보지 않지만 적어도 삼성이 휘청거리면 우리 경제에 미칠 후폭풍이 핀란드가 경험한 ‘노키아 쇼크’ 못지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속에서 막을 올린 ‘이재용 삼성’의 항로는 삼성 및 연관업체 임직원뿐 아니라 대다수 한국인의 앞날에도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칠 중요한 변수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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