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이 씨는 어떻게 정 씨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까. 이름도 생소한 기기 덕분이다. 이 씨는 심폐소생술로도 정 씨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역무원에게 “모든 지하철역에는 AED가 있다. 빨리 AED를 가져오라”고 요청했고, AED로 가까스로 정 씨의 의식을 되돌렸다.
AED는 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자동제세동기(自動除細動器), 또는 제세동기라고 한다. 이 기기는 지하철역 등 대부분의 공공시설에 비치하도록 돼 있으며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AED도 어렵지만, 제세동기도 그에 못지않다.
신부용 KAIST 겸직교수는 며칠 전 필자에게 e메일을 보내 역무원조차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는 ‘자동제세동기’를 서둘러 알기 쉬운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 번 옳다.
사실 자동제세동기는 이미 그럴듯한 다른 이름이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5월, 79개의 행정 순화어를 선정해 발표하면서 자동제세동기를 ‘자동심장충격기’로 바꾸었다. 뜻이 금방 들어온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언중 대부분은 바뀐 사실조차 모른다.
이제 국립국어원이 나설 때다. 국어원은 서둘러 ‘자동심장충격기’를 표제어로 삼아 국민 누구나 쉽게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게 앞으로 있을지 모를 피해를 막는 길이다. 경각에 달린 목숨을 앞에 두고 “거시기 있잖아, 거시기 가져와”라고 하도록 방치해서야 되겠는가.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