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서를 다 작성해놓고 상사에게 업데이트하기 전의 파일을 보내 혼났어요.”
“USB가 안 돼서 며칠 동안 해결하려 난리쳤는데…. 컴퓨터에 반대 방향으로 꽂았더군요.”
“두세 시간 걸릴 일 같은데, 전 왜 일곱 시간이 걸릴까요? ㅠㅠ”
개설된 지 9개월째 되는 이곳의 19일 현재 가입자는 4769명. 비공개 페이지임에도 회원은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직장동료가 있을까봐 소심하게 ‘눈팅’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페이스북 계정을 하나 더 등록해 이용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페이지를 만든 운영자는 당당히 일못임을 자처합니다. 시민단체에서 일했다는 그는 불현듯 본인이 심각한 일못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복잡한 보고서를 만들고 조직생활의 룰을 따라야 하는 게 자신과 맞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일못이라는 사실에 주눅 들지 않습니다. 한 주간지의 칼럼 필진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당신도 일못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내 글이 별로라면 나를 섭외한 기자가 일못”이라고 외치지요.
일못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평범한 직장인부터 알바생, 대학원생, 언론인까지 회원은 실로 다양합니다. 어리바리한 사회 초년생도 꽤 많이 보입니다. 밥 먹듯 만들어내는 오타, 계산기를 두드려도 틀리는 셈, 방금 들은 내용도 돌아서면 까먹는 놀라운 기억력 등…. 실수 내용들도 어쩜 그리 내 얘기 같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못들은 때론 억울하답니다. 사실과 다르게 일못으로 규정되는 사례가 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런 글을 올립니다.
“왜 일을 한 번에 3, 4개씩 주고는 동시에 당장 해내라고 합니까, 퇴근도 못 하게.”
이런 글을 접하는 일못 회원들은 분개합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주면서 “대체 우리가 왜 욕을 먹어야 하느냐”고 따집니다. 회원들의 소속감은 이 같은 울분을 공유하며 비로소 굳건해집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잠재적 일못’입니다. 일못은 상대적인 개념이기도 하니까요. 성격과 호흡이 맞지 않는 상사와 일할 때, 조직의 이익에 반해 소신껏 행동할 때, 윗사람의 의중과는 다른 아이디어를 내놓을 때….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일못이 되지 않을까요? 일못 회원들이 단순히 실수만 거듭하는 애물단지가 아닌 이유입니다.
운영자는 일못 페이지가 일을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원한다고 합니다. 투덜대던 일못들은 자연스레 ‘노동권’ 같은 이슈에 관심을 갖습니다. 억울하게 해고를 당한 알바생들,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았지만 강제 퇴사를 당한 비정규직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래서 상사에게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요구했다는 글, 고생 끝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는 글 등이 올라올 때면 그 어느 때보다 반응이 뜨겁습니다. 어이없는 실수담보다 이런 글들에 ‘좋아요’와 ‘댓글’이 폭발하곤 합니다.
최지연 오피니언팀 기자 lim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