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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도장 값

입력 | 2015-03-21 03:00:00


우리나라는 법관이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 선진국의 법관들은 정년 근무를 원칙으로 삼고 중도 퇴직 자체를 잘 하지 않는다. 법관이 정치나 행정으로 외도하는 것은 더 생각하기 어렵다. 선진국 의회에 변호사 출신은 많아도 법관 출신은 거의 없다. 우리 국회에는 법관 출신이 수두룩하다. 대법관 출신은 총리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법관에 대한 상이 잘못 정립돼 있다.

▷한국에 정년까지 근무하는 법관이 거의 없는 것은 전관예우(前官禮遇)가 있어서다. 고법 부장판사가 못 될 것 같으면 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대법관이 못 될 것 같으면 고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옷을 벗는다. ‘용퇴’로 포장하긴 하지만 전관예우를 받을 차례가 온 것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대법관만큼은 변호사 개업을 자제하는 풍토가 있었다. 대법관은 종착지로 여겼지 전관예우를 위한 경유지로는 여기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전관예우의 꽃이 대법관 출신으로 바뀌었다. 상고사건이 늘어나면서 대법관 1명이 한 해 처리하는 사건이 3000건이 넘는다. 대부분 사건은 대법관이 훑어보지도 못한 채 재판연구관들 선에서 걸러져 기각된다. 대법관이 한 번이라도 사건을 훑어보려면 상고이유서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이름이 올라 있어야 한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데 그 도장을 서로 받으려 하니 도장 값이 3000만∼5000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불허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관 출신에게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법률에 근거가 없는 개업 불허는 잘못이다. 하지만 도장 하나 찍어주는 것만으로 수천만 원씩 버는 구조를 뻔히 아는데 대법관 출신이 당연한 듯이 변호사 개업에 나서는 것은 보기에 민망하다. 대법관 정도 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가 있어야 한다. 변호사 개업을 하더라도 옛 동료나 후배에게 부담을 주는 소송사건은 수임을 자제하는 것이 법 이전의 도리일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