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잃은 공무원연금 개혁] 대타협기구 83일간 ‘표류’…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 현주소
“하루에 100억 원씩, 8000억 원의 세금이 나간 셈이다. 국민 목소리를 (언제까지) 외면할 건가.”(양준모 위원·여당 추천·연세대 교수)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 중간점검을 위해 19일 국회에서 열린 공무원연금개혁 국민대타협기구 전체회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험악했다. 대타협기구 출범 뒤 83일 동안 28차례 회의가 열렸지만 정부·여당과 야당 및 공무원단체 측 논의는 겉돌기만 하고 있다.
○ 사실상 정부·여당안만 공개…‘대타협 정신’ 무색
대타협기구 참여 주체들이 자체 개혁안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대타협기구 논의가 지지부진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나마 새누리당은 지난해 10월 김무성 대표 명의로 당 소속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인사혁신처도 대타협기구 내에서 ‘기초안’을 제시했다. 두 가지 안 모두 신규 공무원은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구조개혁’ 안이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과 공적연금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투본) 측은 “구조개혁에 반대한다”는 뜻만 밝히고 있을 뿐 자신들이 요구하는 개혁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타협기구 공동위원장인 새정치연합 강기정 의원은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여당안보다 재정절감효과가 훨씬 큰 ‘모수개혁’안을 갖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언제 공개할지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오히려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 공식안이 나와야 한다”며 공세를 취했다.
새누리당은 유승민 원내대표는 “야당이 ‘입법화된 정부안을 제시하라’고 말하는 건 판을 깨려는 꼼수”라고 발끈했다.
○ 최대 쟁점은 노후소득 보장 ‘소득대체율’
새정치연합 측은 “인사혁신처의 기초안에 따르면 신규 공직자가 재직기간 30년을 기준으로 받는 연금 소득대체율은 30.98%에 불과하다”며 반대 입장이다. 충분한 노후소득보장이 안되는 ‘반쪽 연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최소 50%는 돼야 한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반면 인사혁신처는 “민간수준으로 현실화되는 퇴직금을 합하면 신규 공직자들의 소득대체율은 50%에 달한다”며 야당 주장을 반박했다. 새누리당이 제출한 개혁안도 정부 기초안의 소득대체율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투본은 당초 공무원연금 소득대체율을 “30년 기준으로 60%는 돼야 한다”고 밝혔다가 이를 번복했다. 한 전문가는 “현행 공무원연금의 소득대체율이 62.7%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투본 주장은 사실상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 노조 “시한연장”…여야 “연장은 없다”
새누리당 유 원내대표는 “대타협기구는 28일까지 노력하고 종료하는 것으로 확실히 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새정치연합 강기정 의원도 “기한 연장을 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공투본 김성광 공동집행위원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야가 당사자의 견해를 무시한 연금개혁안을 처리한다면 총파업 등 총력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 물밑에선 제3의 절충안 부상
진통 속에 물밑에서는 제3의 절충안이 급부상하고 있다. 대타협기구 위원인 고려대 김태일 교수가 제안한 안으로 구조개혁안에 신규 공직자들의 노후소득보장을 보완하는 ‘저축계정’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재직자에 비해 신규 공직자는 보험료를 5.5% 덜 내게 된다”면서 “덜 내는 보험료를 공무원연금공단에 불입하는 저축계정을 만들고 정부가 최소한을 지원한다면 재정적자도 줄이고 노후소득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도 긍정적이다. 대타협기구 공동위원장인 조원진 의원은 “재정건전성에 있어서는 우리가 낸 안과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새정치연합 측과 공투본 측은 우선 ‘반대’ 의사를 표했다. 그러나 대타협기구 관계자는 “이번 주말 여야와 공투본과의 물밑 협의에서 절충안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현수 soof@donga.com·배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