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외교장관회의]회담 이후 한중일 손익계산서
“서로 마주 앉으려고도 하지 않던 중국과 일본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것만으로도 성과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22일 전날 열린 한중일 3국 외교장관 회의에 대해 “회의 결과는 만족스럽다”며 이같이 자평했다. 중국, 일본 외교장관도 이날 채택된 공동 언론발표문에서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이번 회의 개최를 포함해 3국 협력을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해 온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중일 3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방정식은 복잡했다. 3국 정상회의를 조기 개최한다는 선언이 실제로 성사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8월에 발표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담화 내용도 한중일 3국 관계의 향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변수다.
한국은 이번 회의에서 ‘중재자’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 주도로 3년 만에 3국 외교장관 회의가 재개됐기 때문. 특히 아베 총리의 4월 말 미국 방문을 앞두고 한국의 ‘대화 노력’을 부각시킨 것은 적지 않은 성과로 보인다. 한국이 지나치게 과거사에 매몰돼 한일관계 돌파구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는 미국 정치권의 ‘한국 피로감(Korean Fatigue)’을 불식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지난달 “과거의 적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받기는 쉽다”고 한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의 발언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지만 미국 주류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많았다. 하지만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3국 정상회의 개최 의지를 밝히고 3자 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미국 조야의 한국 비판론도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불거진 갈등 전선을 한중에서 중일로 이동시킨 효과도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문제로 한국과 중국의 갈등 일변도로 전개되던 양상이 중일 갈등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방한 기간에 사드 문제를 일절 꺼내지 않았고 AIIB 문제도 “한국이 진일보한 검토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담담하게 밝혔다.
○ 사드 언급 안 한 중국, 일본 때리기 집중
회의 기간 내내 일본의 역사청산 문제를 ‘최대 화두’로 삼은 왕 부장은 중일 양자회담 뒤 기자들에게 “역사 문제는 피할 수 없다. 양쪽(중일)이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중일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왕 부장은 “일본이 원하는 건 알고 있다.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며 일본의 각성을 촉구했다. 일본 외무성 당국자는 “중일 회담의 절반 이상이 역사 문제에 할애됐다”고 말했다.
○ 기시다 외상, 한때 현충원 방문 검토
일본으로서도 3국 외교장관 회의가 성사되면서 한중 공조로 ‘동북아 왕따’였던 신세를 면할 교두보를 마련한 것은 성과로 보인다. ‘한국 등 주변국과 잘 지내라’는 미국의 주문을 소화한 상태에서 아베 총리의 방미와 의회 연설을 추진할 수 있게 된 점 역시 성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중일 양국 회담 직후 3국 외교장관 회의 개막을 40분이나 늦추며 발표문을 손질할 만큼 중국의 초강경 입장에 당황한 기색을 비추기도 했다.
일본은 한국 국민들에게 친근감을 보이기 위해 기시다 외상이 국립서울현충원이나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불발됐다. 기시다 외상은 22일 서울의 한 삼계탕집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