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뉴스룸/유근형]참을 수 없이 가벼운 복지논쟁

입력 | 2015-03-23 03:00:00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9.8%.’

국내 복지 현실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치가 있다. 2013년 국내총생산(GDP)에서 공공사회복지지출(SOCX)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수치에 대한 해석이 진영마다 제각각이라는 점. 진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2.1%)의 절반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복지 확대의 근거로 내세운다. 반면 보수는 2060년(29%) 이후에는 OECD 평균을 돌파하고 현재도 빠르게 증가하기 때문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들을 때마다 양쪽 모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진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복지지출을 줄인 서유럽 국가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보수는 미래의 국내 전망 수치와 현재의 해외 수치를 한 테이블에 놓고 비교해 억지스럽다.

더욱 안타까운 건 수치의 디테일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2060년 국내 복지지출에서 가장 많은 80%를 차지해 국민 부담이 가장 큰 것은 국민연금, 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고용산재보험 등 4대 사회보험이다. 현재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무상급식, 무상보육은 인구 감소로 전체 복지 지출의 5%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복지 논쟁이 지나치게 근시안적이고 초보적 수준이라는 학자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집채만 한 쓰나미(4대 보험)가 몰려오고 있는데 방파제(무상급식·보육)의 높이를 약간 올릴지 줄일지를 두고 논쟁하는 꼴이다. 방파제로는 쓰나미를 절대 막을 수 없는데 피 터지게 싸우는 모습이 정말 애처로울 정도다.

특히 무상급식은 정책의 시급성, 향후 재정 규모를 고려할 때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이 자율적으로 진행하면 될 일이지, 중앙정부와 정치권까지 나서 소모적인 논쟁을 펼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경남도청까지 내려가 무상급식을 모든 복지 논쟁의 블랙홀로 만든 것도 ‘전체 복지 확대’를 위해서 악수(惡手)였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대한민국의 복지는 정치인들의 우발적인 구호에 의해 누더기처럼 확대돼 왔다. 이 때문에 어떤 복지가 우선적으로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조차 우리에겐 없었다. 지난해 말 ‘증세 없는 복지’ 논쟁에 불이 붙으면서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구성해 제대로 된 복지의 미래를 논해 보자는 얘기가 나왔지만 그때뿐이었다. 또다시 무상급식이 복지 논쟁의 최전선이 돼버린 현 시국을 바라보자니 복지에 대한 정치인들의 생각이 여전히 즉흥적이고 1차원적인 것 같아 씁쓸하다.

진정으로 한국의 복지가 걱정된다면 미래에 가장 부담이 될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부터 살피는 것이 순서다.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에 속도를 내서 부당한 무임승차를 줄이고 향후 노인 의료비 급증에 대비해야 한다. 정권에 부담이 되더라도 미래 세대를 위해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려는 시도도 필요하다. 핵심은 없고 변죽만 울리는 복지 논쟁으로는 희망이 없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