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국내 복지 현실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치가 있다. 2013년 국내총생산(GDP)에서 공공사회복지지출(SOCX)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수치에 대한 해석이 진영마다 제각각이라는 점. 진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2.1%)의 절반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복지 확대의 근거로 내세운다. 반면 보수는 2060년(29%) 이후에는 OECD 평균을 돌파하고 현재도 빠르게 증가하기 때문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반박한다.
더욱 안타까운 건 수치의 디테일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2060년 국내 복지지출에서 가장 많은 80%를 차지해 국민 부담이 가장 큰 것은 국민연금, 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고용산재보험 등 4대 사회보험이다. 현재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무상급식, 무상보육은 인구 감소로 전체 복지 지출의 5%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복지 논쟁이 지나치게 근시안적이고 초보적 수준이라는 학자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집채만 한 쓰나미(4대 보험)가 몰려오고 있는데 방파제(무상급식·보육)의 높이를 약간 올릴지 줄일지를 두고 논쟁하는 꼴이다. 방파제로는 쓰나미를 절대 막을 수 없는데 피 터지게 싸우는 모습이 정말 애처로울 정도다.
특히 무상급식은 정책의 시급성, 향후 재정 규모를 고려할 때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이 자율적으로 진행하면 될 일이지, 중앙정부와 정치권까지 나서 소모적인 논쟁을 펼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경남도청까지 내려가 무상급식을 모든 복지 논쟁의 블랙홀로 만든 것도 ‘전체 복지 확대’를 위해서 악수(惡手)였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대한민국의 복지는 정치인들의 우발적인 구호에 의해 누더기처럼 확대돼 왔다. 이 때문에 어떤 복지가 우선적으로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조차 우리에겐 없었다. 지난해 말 ‘증세 없는 복지’ 논쟁에 불이 붙으면서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구성해 제대로 된 복지의 미래를 논해 보자는 얘기가 나왔지만 그때뿐이었다. 또다시 무상급식이 복지 논쟁의 최전선이 돼버린 현 시국을 바라보자니 복지에 대한 정치인들의 생각이 여전히 즉흥적이고 1차원적인 것 같아 씁쓸하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