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國父’ 리콴유 타계/이설 특파원 현지 르포] 지금의 싱가포르 있게 해준 당신”… 거리-공관-병원앞 추모인파 가득
이설 특파원
이설 특파원
나라의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안정의 기틀을 세워 ‘국부(國父)’로 존경받는 리 전 총리가 향년 92세로 타계하자 국민들은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며 눈물을 흘리며 애도했다. 싱가포르종합병원과 가족 장례식이 치러질 총리 공관, 정부가 마련한 분향소 앞에는 시민들이 가져온 꽃이 차곡차곡 쌓였다. 거리 곳곳엔 늦은 밤까지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관공서마다 조기(弔旗)가 내걸려 도시 전체에서 장례식 분위기가 배어 나왔다.
싱가포르 총리실은 23일 오전 성명을 내고 “리 전 총리가 오늘 오전 3시 18분(한국 시간 오전 4시 18분) 세상을 떠났다. 평화롭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리셴룽(李顯龍) 총리가 슬픈 마음으로 전 국민에게 알려드린다”고 발표했다. 리 총리는 리 전 총리의 장남이다.
▼ “재임때 공관 비운채 소박한 삶… 고인돼서야 오셨네요” ▼
‘눈물에 잠긴 싱가포르’
이설 특파원
이설 특파원
밤이 되자 추모객들은 더욱 늘어났다. 오후부터 공관 앞에 모여든 시민들은 일렬로 줄을 지어 리 전 총리를 조문했다. 대부분 검은 양복과 검은 원피스를 입었고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리셴룽 총리도 현재 공관에 살지 않는다. 그는 이날 오전 8시(현지 시간) 부친의 타계를 공식 발표하는 TV 연설을 통해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에게 자랑스러운 국가 정체 의식을 불어넣었다”며 “우리는 앞으로 그와 같은 인물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싱가포르 자체였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등 3개 언어로 연설을 하면서 슬픔이 북받치는 듯 수차례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러면서 “건국 총리 리콴유 선생, 편안히 쉬십시오”라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이날 공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토니 탄 싱가포르 대통령과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 등이 다녀갔다. 공관 내부에 안치된 리 전 총리의 관은 하얀 꽃들로 장식됐다. 상주인 리 총리는 검은색 바지와 흰색 티셔츠 차림으로 직접 조문객을 맞았다.
리 전 총리가 마지막으로 머무른 싱가포르종합병원 앞에도 추모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싱가포르 당국은 25일까지 탄종파가르, 앙모키오 등 시내 중심가 18곳에 분향소를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다. 택시 기사인 존 폴림 씨(53)는 “싱가포르의 엄청난 변화와 리 전 총리의 리더십을 직접 겪은 우리 세대나 부모 세대는 너무 상심이 크다”고 말했다.
리 전 총리의 타계와 동시에 싱가포르 정부가 만든 추모 홈페이지(www.rememberingleekuanyew.sg)는 이날 오전 접속자가 크게 몰린 탓인지 한때 작동이 중지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고인이 부인 콰걱추 여사와 젊은 시절 데이트하면서 찍은 사진, 현지 시찰을 하며 찍은 사진 등 생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올라 있다.
외국인들도 “현대사의 거인이 쓰러졌다”며 깊은 애도를 표시했다. 공관 앞 분향소를 찾은 일본인 교사 모리야마 씨(46)는 “한 국가의 정치를 자신만의 철학으로 그만큼 밀어붙인 이가 없다는 점에서 리 전 총리는 대단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발표된 직후부터 이날 오후 11시까지 리 전 총리를 언급한 전 세계 트윗과 리트윗은 19만 건을 넘어섰다.
싱가포르=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