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 매거진 ‘도미노’ 동인
이러한 당황스러운 몇 가지 상황 덕택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운동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선언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은 예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가부장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남성들이야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원래 항상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한다던 좌파운동권 ‘형’들의 반응이었다. 양성 평등을 부르짖고 있는데, “여성 해방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선 계급 해방을 생각해야 한다”는 궤변으로 대답하는 해묵은 운동권식 반론이 이어졌다. 그리고 “남성의 동의를 얻어가면서 부드럽게 운동하라”는 ‘오빠’의 조언이 첨부되었다. “페미니즘을 강요하는 것은 파시즘”이라는 웃지 못할 말들도 이어졌다.
여기서 문제는 김 군의 페미니즘 혐오 반응이 생각보다 넓고 깊게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여성 인권을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은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말로 운을 떼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마도 보통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를 독하고 경직된 사람들로 생각하기 때문일 거다. 모든 이슈에 호전적으로 대항하는 여전사의 이미지. 그 때문인지 페미니즘은 유독 사람의 공감을 자아내거나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좋지 못한, 불편한 태도라는 지적이 따라다니곤 했다.
페미니즘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은 남성의 일이 아니라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남성의 일이 아니므로 여성이 처한 상황을 짐작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면 그건 살짝 치사한 변명이다. 한국에서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은 약 62만6000원을 번다는 통계가 있다. 10년도 넘도록 남녀 소득 차이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단연 1위다. 이 황당한 숫자 앞에서 여성 차별을 짐작하기 위해 거창한 추리나 복잡한 연산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2015년 현재, 20대의 극심한 남초현상이 여아 낙태로 인한 결과라는 통계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태어나지도 못하는 사실 앞에서 “나는 여자가 아니라서 잘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현대적 인간이라면 모든 인간의 정체성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차별금지의 원칙이 건강하지 않을 때에는, 내가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에만 예민해진다. 그러나 차별 금지의 원칙이 건강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이 차별의 주체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따져봐야 한다. 특히 사회 내에서 한번도 하위 주체의 위치에 서보지 않은 남성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못생긴 나를 놀리는 것은 안 되지만, 못생긴 여자를 놀리는 코미디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그런 일상의 성차별에 대해 이제는 다시 고민해 보아야 한다. 남성들이라면 한번 생각해보자.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여성들이 혹시 더이상 올라갈 수 없는 유리천장에 가로막혀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차별을 알고 있지만 지금껏 당연하게 묵인해 온 것은 아닌지. 여성을 차별하고 비하해 온 가해자로서 남성은 페미니즘의 당사자다. 당연히 페미니즘에 대해 편하게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한다.
함영준 매거진 ‘도미노’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