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현식 국립국어원장
‘봄’의 어원은 겨우내 갇혀 지내다 대자연을 ‘보게’ 되는 계절이란 뜻에서 ‘보다’의 명사형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단정하기 어렵다. ‘도약하다, 뛰놀다’라는 뜻의 옛말 ‘봄놀다, 봄뇌다’가 ‘뽐내다’로 변했기에 여기서 ‘봄’의 약동감을 찾기도 하지만 이것도 단정하기 어렵다. ‘봄’의 어원은 불확실하지만 어쨌든 ‘봄’이란 말에서 희망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말이 너무 혼탁하니 ‘봄’이 되어도 우리말의 봄기운을 찾기 어렵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언어문화 개선운동’을 연중 벌이고 있지만 외국어 남용과 모어 파괴는 갈수록 심하다. 새봄을 알리는 매화축제 안내문에서는 ‘봄 매화, 여름 매실로 우리 함께 힐링합시다’라고 ‘힐링’을 외친다. ‘세계화, 국제화’는 ‘글로벌’로, ‘여행’은 ‘투어’로, ‘신장개업’은 ‘오픈’으로, ‘섬세하다, 정교하다’는 ‘디테일하다’로 바뀐 지 오래다. 어느새 우리 스스로 영어를 일류어로 높이고, 한국어를 이류어로 비하시키고 있다.
우리는 우리말에 희망의 샘물 대신 절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섬머 페스티벌, 윈터 타이어’를 보면 ‘봄’도 ‘스프링’으로 바뀔지 모른다. 만해 한용운 시인은 1926년 동아일보 투고에서 “끝없이 바다에 쑥 솟아오르는 해처럼/힘 있고 빛나고 뚜렷한 가갸날/‘데이’보다 읽기 좋고 ‘시즌’보다 알기 쉬워요”라고 했는데 요즘은 ‘데이, 시즌’도 흔하다.
만해는 절규하듯 외쳤다. “가갸로 말을 하고 글을 쓰셔요/혀끝에서 물결이 솟고 붓 아래에 꽃이 피어요/그 속엔 우리의 향기로운 목숨이 살아 움직입니다/그 속엔 낯익은 사랑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감겨 있어요/굳세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노래하여요.”
그래도 바깥에서는 희망찬 소식이 들려온다. 미국 대학에서 한국어가 수강자 수로는 10대 외국어에 들었다고 한다. 선진 한국의 미래를 창조하고 문화융성을 이루려면 경청과 배려의 국어 사용으로 우리말의 봄기운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말의 영원한 봄을 위해 외국어의 굴레와 부정적 표현들의 늪에서 우리말을 살리자. 우리말이 우리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