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에게 14년간 성폭력을 저질러 큰 딸이 자살하게 한 친부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성폭력수사대는 어릴 때부터 성폭행, 성추행을 가해 큰 딸 A 씨(지난해 사망·당시 24세)가 자살하고, 작은 딸 B 씨(24)도 자살을 시도하게 한 김모 씨(54)를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24일 밝혔다.
김 씨는 딸들에게 성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유아기부터 아내가 집을 비운 틈을 타 성폭력을 가했다. 경찰 수사결과 그는 A 씨에게는 1994년부터 14년간 성추행과 성폭행을, B 씨에게는 2001~2003년에 성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A 씨는 4세 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친할머니에게 털어놓은 적도 있다. 하지만 할머니는 오히려 “바깥에 가서 얘기하지 말라”고 때리며 협박했다. 결국 A 씨는 무서워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딸들은 학교에 입학해 성교육을 받으며 자신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하지만 김 씨는 아이들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고아원에 보내버리겠다”며 계속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2006년 아내와 이혼하고 아이들과도 따로 살게 됐지만, A 씨의 학교를 찾아가 “자꾸 반항하면 동생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해 성폭행을 했다.
“그 당시 저는 스무 살이었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 인지 상태가 7,8세 수준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였고, 엄마는 그런 저를 데리고 저를 낫게 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가겠다며 모든 일을 접고 제 손을 부여잡고 이것저곳 안 돌아다닌 곳이 없습니다.”
“저와 같이 성폭력으로 힘들어하는 분들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너무 무섭고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아 칠흑 같겠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서 하루라도 빨리 도움을 청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침묵하고 살아온 시간이 긴 탓에 그만큼 상처가 깊어 치료하는 시간도 길고, 마음을 너무 많이 다친 탓에 사람들과 교류가 힘이 듭니다…. 절대 자책하지 마세요.”
A 씨는 “언젠가 저와 같은 아픔을 지닌 분들께 제가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는지 말씀드리고 싶은 작은 꿈이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 삶의 무게를 견디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성폭행으로 인한 중증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너무 심했던 탓에 결국 지난해 5월 24일 스스로 목숨을 끊고야 말았다.
동생 B 씨는 언니의 자살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그 역시 친부의 성추행으로 인해 악몽, 불면증, 우울증에 시달렸고, 정신과 병원과 성폭력상담소에서 치료 및 상담을 받아왔다. 하지만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지난달 6일에 한남대교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했다. 용산경찰서 한남파출소는 B 씨를 구조해 조사하던 중 피해사실을 접했다. 경찰은 A 씨가 이미 고인이 된 만큼, 주변인 진술과 병원 및 상담소 기록을 확보해 수사를 진행해왔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의 기미도 없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와 어머니가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세상에 (사건을) 알려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고 전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