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전문기자
2011년 7월 1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 천빙더(陳炳德)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우리의 합참의장에 해당)이 작심한 듯 미국을 맹비난하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앉은 김관진 국방부 장관(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국방부 당국자들과 기자단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김 장관보다 격이 낮은 중국 장성의 기습적인 ‘외교 무례’에 회담장 분위기가 일순 냉랭해졌다. 김 장관은 어색한 미소로 넘겼지만 그의 미국 비난은 15분간이나 계속됐다. 천 총참모장은 “한국도 많은 말을 미국에 하기 어려운 실정임을 잘 알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중국의 씁쓸한 ‘정치 쇼’를 서울 한복판에서 또다시 목격했다. 최근 방한한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행보’를 두고 하는 얘기다.
그는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 앞에서 사드 반대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사드 문제를 우려하며 신중하게 처리돼야 한다”는 완곡어법을 썼지만 ‘결사반대’라는 속내가 역력했다. ‘대국이 좋게 타이를 때 소국은 따르라’는 오만과 한국 경시마저 느껴졌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돌돌핍인((달,돌)(달,돌)逼人·신속한 발전으로 기세등등해져 남을 압력하는 모양)하는 패권외교의 ‘맨 얼굴’을 봤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중국은 사드를 자국 안보를 위협하는 ‘흉기’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율배반적이다. 우선 중국은 사드의 한국 배치를 결사반대하면서 ‘진짜 흉기’인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한 국가(한국)가 안전을 도모하려면 지역의 평화안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사드 반대론’도 앞뒤가 맞지 않다. 오히려 영토분쟁 등을 내세워 역내 군비경쟁을 주도하며 긴장을 초래한 국가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지난 20여 년간 연평균 국방비를 10% 이상 늘려 첨단 전투기와 항모, 전략핵잠수함 등 군사력 건설에 주력해왔다. 한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 어느 곳이라도 핵공격을 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한 미사일 전력도 갖췄다. 올해 안으로 사드보다 사거리가 긴 러시아제 최첨단 S-400 요격미사일도 도입 배치할 계획이다.
이런 중국이 방어무기인 사드의 한국 배치를 반대하는 것은 북핵 위협에 ‘백기투항’ 하라는 요구와 같다. ‘창과 방패’를 모두 갖춘 군사대국이 생사 위기에 직면한 주변국에 손발을 묶으라고 요구해서야 되겠는가. 사드를 빌미로 한미동맹을 이간질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사드 이슈가 이념과 정파적 대결로 변질되는 우리 현실도 우려스럽다. 사드를 찬성하면 ‘친미 보수우파’, 반대하면 ‘반미 진보좌파’로 규정하는 내부 갈등은 북핵 위협의 본질을 흐리고, 주변국에 굴욕외교와 기회주의로 비칠 소지가 크다.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