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균 문화부 기자
헤르만 헤세가 1920년 3월에 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대한 서평 중 한 구절이다.
한가로운 정신놀음일 뿐이겠지만, 신문기자로서 글 쓰는 일의 의미에 대해 요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몇 주 간격으로 서울에서 개막한 국공립미술관 기획전시에 대해 잇달아 비판적인 내용의 기사를 쓰고 나서였다. 천성 나약한 탓에 ‘무식한 기자가 개인의 느낌을 기사로 강요했다’는 식의 뒷공론을 전해 듣고 마음이 어지러웠다.
지난 주말 ‘책의 향기’ 지면에 비비언 마이어라는 미국 여성이 찍은 사진 모음집을 소개했다. 마이어는 가정부 일로 생계를 이으며 25년 넘게 사진 수십만 장을 찍었다. 그리고 평생 누구에게도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가 죽은 뒤 경매를 통해 헐값을 주고 필름 더미를 구입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책을 엮어 냈다.
비약이겠으나 글을 쓰면서 헤세가 다른 서평에서 거듭 진한 애정을 드러낸 프란츠 카프카를 돌이켰다. 카프카의 유언은 ‘출간되지 않은 원고를 모두 없애 달라’는 것이었다. 유언 집행자인 친구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뜻을 거슬러 원고를 정리해 차례로 책을 출간했다. 헤세는 브로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자신의 이름을 저자처럼 박아 넣은 마이어의 필름 구매자에게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옳을까.
줄곧 써낸 기사를 되짚으며 카프카의 유언을 떠올리는 건 그저 망발(妄發)이다. 이따금 직접 촬영해 올린 사진은 마이어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매일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기자의 일이다. 괜찮은 걸까.
최근 한 선배와 점심을 먹었다. 그는 “아는 것 이상, 심지어 잘 모르는 것조차 알고 있는 것처럼 포장해 이야기하는 테크닉의 효용과 미덕”에 대해 한동안 설명했다. 분명 선의의 조언이었지만 한동안 몹시 서글펐다. 따를 수 없음을 바로 알아챘기 때문이다.
손택균 문화부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