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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의 정원의 속삭임]베란다가 있어 다행이다

입력 | 2015-03-26 03:00:00


작은 베란다를 아름답게 꾸미려면 정리와 통일이 중요하다. 같은 모양의 화분을 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오경아 씨 제공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 완연한 봄. 내 집에도 작은 정원을 꾸밀 수 있을까? 아파트 베란다나 작은 여유 공간만 있다면 가능할 것 같다. 가든디자이너 오경아 대표가 집에서 식물을 가꾸는 노하우를 공개한다. 오 대표는 방송작가로 일하다 2005년 영국 에섹스대에서 조경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강원 속초시에서 오경아디자인연구소와 함께 정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


영국 출신의 위대한 가든디자이너 거트루드 지킬(1843∼1932)은 이런 말을 했다. “정원은 위대한 선생님이다. 정원은 우리에게 참을성과 조심성, 근면과 절약을 가르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지킬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정원 자체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원이 아니라 정원 속에서 몸을 움직여 식물과 흙을 돌보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에서는 의사가 공식적으로 ‘원예활동을 주 1회, 2시간씩 할 것’이라는 식의 원예처방을 내릴 수 있도록 결정했다. 이는 약품이나 주사를 처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예활동이 의학적 효과가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베란다 정원은 이미 서유럽에서는 보편화된 도시 정원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베란다 정원은 흙에서가 아니라 용기에 흙을 담아 식물을 키우기 때문에 흔히 ‘화분 정원’으로 불리는데 최근에 발달한 도시 문화인 듯싶지만 역사가 깊다.

화분이 최초로 등장한 시점은 기원전 13세기의 이집트 람세스 2세 시대로 본다. 토분에 덩굴식물을 심어 신전의 기둥을 장식했던 흔적이 발견됐다. 이 화분 문화가 이집트를 거쳐 고대 그리스로 전해져 오늘날의 발코니 혹은 베란다 정원으로 발전했다고 추측한다. 당시 도시 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아테네는 정원을 만들 공간이 부족하자 화분을 이용해 이른 봄부터 옥상이나 골목에서 보리나 펜넬 등의 허브를 키웠다. 그리고 화분 속 식물이 성숙해지는 초여름이 되면 이걸 들고 나가 광장에서 축제를 벌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플라워쇼(꽃박람회)의 기원이 된 ‘아도니스 축제’다. 아도니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화살에 맞은 수퇘지의 공격으로 죽은 젊은 남자로, 죽은 후 꽃(복수초)으로 환생했다. 결론적으로 꽃으로 부활한 아도니스를 기리는 축제는 겨울을 이겨낸 식물의 부활을 축하하고 고마워하는 정원문화다.

그렇다면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처럼 비교적 겨울 추위가 매섭지 않은 곳에서만 베란다 정원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이 또한 기우다. 베란다는 집안에서 햇볕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장소이고 방수, 배수가 완벽해 별도의 추가 시공이 필요 없으며 문을 열어두면 외부의 바람과 비가 들어와 정원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문제는 어떻게 베란다 정원을 시작하느냐는 것인데 우선 베란다를 깨끗이 비우자. 가장 쉬운 방법은 화분을 이용해 심고 싶은 식물을 심는 것인데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화분은 플라스틱, 쇠, 나무, 도자기, 진흙 등 재질이 천차만별이고 모양도 호리병, 사각형, 원형 등으로 다양하다. 아깝다고 이 화분을 정리하지 못하고 다 이용하면 어떤 식물을 심더라도 어지러움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테라코타 화분을 선호한다면 같은 종류로 통일을 하거나 하나의 색감으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더불어 한 가지 팁을 주자면 택배용 스티로폼 박스를 구입해 같은 모양으로 통일하는 것도 훌륭한 정원 연출이 된다.

이 계절 가장 눈에 들어오는 식물은 역시 수선화, 튤립, 크로커스, 히아신스, 복수초 등의 식물이다. 흙을 담을 용기가 준비됐다면 이제 식물 시장으로 나가 보자. 식물을 살 수 있는 시장은 집 근처 식물 판매점이나 수도권 거주자라면 양재 꽃시장, 과천 남서울 화훼단지, 헌인릉 화훼단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흙을 구하는 일이 도시에서는 의외로 큰일인데 산에서 흙을 퍼오는 것은 금물이니 원예 상토를 구입하자. 원예 상토는 식물성 유기질과 버미큘라이트라는 튀겨진 광물이 첨가된 부드럽고 가벼운 부엽토를 말한다.

지킬이 말한 정원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실함’은 우리의 노력과 관심만큼 정원이 우리에게 보답을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식물은 기가 막히게도 하루에 몇 번이나 눈길을 주었는지, 내 손길에 식물의 잎이 얼마나 만져졌는지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이 아름다운 진실함을 전해주는 공간이 우리에게 있음을 잊지 말자. 작아서 더 아름답고 소중한 베란다가 있어서, 어느 가요 가사처럼 “정말 다행이다!”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