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 특파원 현지 르포 3信
스마트폰 촬영… 줄이은 조문행렬 25일 오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영구를 실은 운구차가 대통령궁에서 나와 국민 조문이 이뤄질 국회의사당 쪽으로 향하자 궁 밖에 몰려 있던 시민 수천 명이 일제히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찍고 있다(위 사진). 리 전 총리의 영구가 안치된 의사당 앞에 길게 줄을 서 조문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아래 사진). 싱가포르=AP 뉴시스 로이터 뉴스1
이설 특파원
오전 9시 반. 마침내 궁의 정문이 열리고 정문 앞 양쪽으로 도열한 군인들 사이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시신이 담긴 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군중은 역사적 순간을 담기 위해 약속이라도 한 듯 스마트폰을 높이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생큐 파더(father)” “생큐 리콴유” “유 아 마이 히어로(You are my hero)”를 외쳤다.
가족 애도 기간인 이틀간 대통령궁 내 총리관저에 안치돼 있던 리 전 총리의 시신은 이날 나흘간 국민 조문을 받기 위해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관은 투명한 유리함에 들어 있어 군중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일부 시민들은 운구차를 뒤따라 달려가기도 했다. 뛰어가다 멈춰서 울음을 터뜨린 주부 제인 리 씨(53)는 “지금 싱가포르 국민들은 아버지를 잃은 자식 입장이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한다. 의사당에 가서 또 추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당까지 가는 2km 인도에 죽 늘어서 있던 수천 명의 시민은 운구 행렬이 지나갈 때 “생큐 리콴유” “생큐 파더”를 외치면서 국기를 흔들었다.
오전 10시 운구차가 의사당에 도착하자 정복을 입은 군인 8명이 관을 유리함에서 꺼내 의사당으로 메고 들어가 중앙 홀에 준비된 작은 단 위에 올려놓았다. 자주색 천을 씌운 단은 가로세로가 각각 1.5m, 2m도 안 될 정도로 작았다. 높이도 성인 무릎 정도밖에 안 됐다. 관 앞에는 흰 꽃으로 테두리가 장식된 고인의 작은 초상화 외엔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국부가 국민을 맞이하는 장소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소박한 제단이었다.
의사당 밖은 조문을 하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순식간에 인산인해를 이뤘다. 불과 2시간 만에 의사당은 조문 차례를 기다리는 시민 행렬로 포위됐다.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 행렬은 수천 m나 됐다. 땡볕이 내리쬐는 날씨였지만 자리를 뜨는 이는 없었다. 부채를 부치거나 우산을 펼쳐 햇빛을 가리면서 차분히 입장을 기다렸다. TV에서는 “8시간째 줄을 서도 입장하기 힘들다”며 “오늘은 조문을 권하지 않는다”는 안내 자막이 나올 정도였다.
조문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팀을 이뤄 차례로 의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 번에 20명씩 최대 30분간 머무르는 식으로 진행됐다.
국장(國葬)으로 치러질 리 전 총리 장례는 29일 싱가포르 서북부에 위치한 싱가포르국립대(NUS) 센트럴센터에서 거행된다. 정부 관계자들은 장례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밝힌 외국 정상들도 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이 참석 계획을 밝혔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참석을 검토 중이라고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이 25일 보도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참석하겠다고 25일 밝혔다.
장례식이 끝나면 리 전 총리의 시신은 화장될 예정이다. 고인은 생전에 “내가 죽거든 화장해서 아내의 뼛가루와 합쳐 달라”고 말했었다.
:: 포차(砲車) 운구 ::
프러시아 군대의 전통에서 시작되었다가 1901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나는 군인의 딸로 죽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처음으로 도입되어 국가 지도자 장례식 때 많이 보인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테레사 수녀(1997년 사망) 운구도 포차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