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08>
그녀의 ‘결정 장애’, 어떻게 볼 것인가
“사랑니가 비뚜로 난대. 어떡하지?” 아내의 전화에 남편이 말했다. “뽑아야지.”
그러나 아내는 치과에서 그냥 돌아왔다. “참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남편의 대답. “그러든가.”
‘결정 장애’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선택을 유난히 어려워하는 심리를 반영하는 신조어다. 특히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선택일 경우에는 결정을 미루다가 타이밍을 놓쳐버리는 경우도 많다.
당당하던 아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선택의 순간이 대표적이다. 적지 않은 여성에게 이런 성향이 있다. 하나를 고르기 위해 다른 것들을 버려야만 하는 갈림길에서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남자 중에도 엄마가 정해준 대로만 따르다보니 스스로 선택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
결정 장애의 늪에 빠진 사람들은 선택을 미루고 자꾸 주변에 물어본다. 의견 수렴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 다행이겠지만 사람들을 힘들게 할 때도 많다.
사랑니 때문에 수술을 받은 아내는 남편을 원망한다. 남편 때문에 애꿎은 고생만 했다는 얘기다. 자책으로 마음 아프지 않으려는 자기방어 심리로 보이기도 한다.
남자 입장에선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무한반복되는 아내의 ‘어떡할까 타령’을 아무리 돌이켜봐도 ‘마음만 알아주면 돼’로 해석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히메노의 분석에는 일리가 있다. 아내의 혼란과 걱정, 불안을 공감하며 기다려주면 그녀 스스로가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치과 수술을 받은 아내의 경우 남편의 ‘그러든가 말든가’식의 성의 없는 대응에 화가 났을 수도 있다.
대다수 여성들은 선택이란 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다. 선택에 익숙한 여성은 결과가 나쁘더라도 자기 결정의 소산임을 받아들인다.
그러니 귀찮다고 영혼 없이 대꾸하거나 혹은 섣불리 대신 결론냈다 원망을 듣는 것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지켜봐주는 것이 서로를 더욱 지혜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