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50년, 기적의 현장을 가다]<4>대림산업, 필리핀 RMP2 프로젝트
대림산업이 필리핀 바탄 주 리마이 지역에서 수행한 ‘페트론 리파이너리(석유 정제공장) 마스터플랜 2단계(RMP2)’ 현장. 공사비가 20억 달러에 달해 동남아에서 한국 건설업체가 수주한 사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대림산업 제공
2010년 말 정유공장 증설 프로젝트를 시작한 필리핀 최대 정유회사인 페트론은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회사를 물색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접촉한 프랑스 건설사는 완공까지 54개월, 다음으로 찾은 일본 건설사는 48개월을 제안했다. 두 곳 모두 성에 차지 않았다.
세 번째로 20년 전 정유플랜트 공사로 인연을 맺은 대림산업을 찾았다. 대림은 36개월을 제시했다. 허풍이 아니었다. 기본설계부터 상세설계, 시공까지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현장관리 경험도 풍부해 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대림산업이 2011년 수주한 ‘페트론 리파이너리(석유 정제공장) 마스터플랜 2단계(RMP2)’ 프로젝트는 37만여 m² 규모의 기존 정유공장을 현대식 설비로 증설하는 공사다.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업체가 수주한 프로젝트 중 금액 기준으로 규모가 가장 크다. 지난해 6월 말 공사를 마쳤고 지금은 시운전을 지원하는 인력이 남아 최종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축구장 52개 크기와 맞먹는 대규모 현장을 운영하면서 대림산업은 약속된 공기를 맞췄을 뿐 아니라 ‘8000만 인시(人時) 무재해’라는 기록까지 달성했다. 직원 1000명이 매일 10시간씩 21년 9개월 동안 사고 없이 공사한 것이다.
폭염과 폭우가 계속되는 악조건 속에서 이뤄낸 성과라 더욱 빛났다. 2013년 7∼9월 바탄 주 리마이 공사현장에는 필리핀 연평균 강수량(2890mm)의 1.5배에 달하는 4300mm 폭우가 쏟아졌다. 한국 1년 평균 강수량(1274mm)의 4배에 가까운 엄청난 비가 56일 동안 내내 쏟아져 텐트를 치거나 펌프를 설치해 물을 빼내면서 공사를 수행해야 했다. 게다가 공사 부지가 화산지대여서 비가 오면 지반이 질퍽해져 작업자들이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다.
○ 최초 많은 건설사… 글로벌 디벨로퍼로 진화
대림산업은 한국 해외건설 역사에서 최초, 1호의 기록을 다수 보유한 건설사다. 1966년 1월 미국 해군시설처(OICC)가 발주한 베트남 락자 항만 공사를 87만7000달러에 수주해 2월 초 공사 착수금 4만5000달러를 한국은행에 송금했다. 국내 건설사의 ‘외화 획득 1호’다. 1973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에 지점을 설치하고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가 발주한 정유공장 보일러 설치 공사를 16만 달러에 수주해 ‘해외 플랜트 수출 1호’라는 쾌거를 이뤘다. 1975년 9월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유공장 건설 공사를 수주해 ‘아프리카 진출 1호’ 기록도 세웠다.
대림산업은 과거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이미 검증받은 설계·조달·시공(EPC) 능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디벨로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디벨로퍼는 건설만 아니라 프로젝트 기획, 사업 지분 투자와 금융 조달, 시설 운영 관리까지 맡는 종합 건설사업자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대림산업은 우선 민자 발전사업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세계적으로 전력소비가 급증하면서 동남아, 인도, 중남미 등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발주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림산업은 국내에서 이미 포천복합화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고, 호주 밀머랜 석탄화력발전소를 통해 해외 민자 발전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네팔, 파키스탄에 민간 개발 사업자로 진출해 수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