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진 산업부 기자
대동강맥주가 맛있다는 평가는 필자 개인의 생각만은 아니다. 2012년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한국 맥주가 북한의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보도해 화제가 됐지만 이전에도 북한을 방문한 외신들은 수차례 대동강맥주의 맛을 칭찬했다.
대동강맥주공장은 2000년 영국 양조회사의 설비와 독일산 장비를 수입해 건설됐다. 오염되지 않은 대동강 지하수와 양강도 혜산시의 특산물인 홉도 맛의 비결이다. 철광석 등의 지하자원을 제외하면 대동강맥주는 소비재 중에서는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북한의 몇 안 되는 상품인 셈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상품을 주요 국가에 수출하지 못한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등도 북한 상품에 대해 금수(禁輸) 조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전향적으로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역발상을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과거 맥도널드가 영업을 하는 국가들 간에는 전쟁이 없었던 것처럼 델 컴퓨터의 글로벌소싱 체계 내에 있는 국가들 간에도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가들이 자신들의 사업이 손실을 입지 않도록 자국의 정치가와 관료를 설득해 국가 간의 충돌을 막으려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북 간에도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남북 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2013년 폐쇄됐을 당시 공단 정상화에 가장 앞장선 이들은 남북의 정치인이 아닌 개성공단 기업가들이었다. 이들 오너 기업인은 거리로 나서면서까지 공단 정상화를 위한 여론을 조성하고 남북 정부를 설득했다. 자신들의 사업적 이익이 걸려 있었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천안함 5주년을 맞은 요즘 북한산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불온’하다고 보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는 결국 경제적 관성에 길들여진다. 남북의 경제적 이익은 어떤 화려한 정치적 수사보다 안보를 보장하고 통일을 앞당긴다. 필자처럼 봄바람 부는 청계천변에서 대동강맥주를 마시고 싶은 소비자가 많아야 얼어붙은 남북관계도 녹일 수 있다.
정세진 산업부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