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g 초미숙아 제주 → 서울 긴급이송 목숨구해
장윤실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교수(오른쪽)가 퇴원하기 직전 건강을 회복한 보라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보라가 다시 부모가 있는 제주도로 돌아가기 위해 헬기에 오르는 모습.
장윤실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교수(51)는 국내 최고 신생아학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그는 국내서 이른둥이(미숙아)의 생존 한계를 뛰어넘어 온 인물이다. 지난해에는 임신 21주 5일(152일)만에 태어난 은혜(가명)를 살려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이는 1987년 캐나다, 2011년 독일에서 152일 이하인 아기를 살려낸 기록에 이어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런 장 교수에게 지금 생각해도 가슴 뛰는 기억이 있다. 바로 장 교수가 치료를 총괄해 지난해 5월 12일 제주대병원에서 임신 23주, 520g으로 태어난 보라(가명)를 생후 34일 만에 헬기를 이용해 서울로 이송한 뒤 살려낸 일이다. 당시 보라의 몸통은 어른 주먹 크기보다 작았다.
국내에서 600g 미만 초미숙아를 헬기로 이송한 경우는 보라가 처음이었다. 보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이른둥이 생존 한계인 임신 23주, 체중 500g에 겨우 턱걸이한 위태로운 생명이었다.
다른 병원 헬기로는 위험이 컸다. 이 병원의 프랑스 유로콥터사 ec155b1 기종은 국내 병원 헬기로는 유일하게 서울과 제주 간을 중간 급유 없이 비행할 수 있는 헬기다. 중간 급유를 할 경우 그만큼 시간이 지체돼 위험성이 증가한다. 국내에는 보라 같은 극초미숙아를 이송할 수 있는 의료장비를 갖춘 비행기가 없다. 배에 구급차를 실어 나른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하지만 50병상인 삼성서울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빈자리가 없었다. 10일 가까이 기다린 끝에 겨우 자리가 났다. 그러나 이번엔 날씨가 문제였다. 헬기 흔들림을 최소화하도록 바람이 없는 맑은 날을 고르기 위해 기상청과 공조했지만,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세 번이나 날짜를 미뤄야 했다. 하루가 일 년 같은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지난해 6월 14일 오전 9시 삼성서울병원 20층 헬기장에서 이 병원 소아과 유혜수, 박가영 교수와 응급실 간호사를 태운 헬기가 제주대병원을 향해 이륙했다. 유 교수와 박 교수는 수차례 초미숙아를 헬기로 이송한 실전 경험이 있었다.
장 교수는 “생명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보라를 450km가 넘는 서울까지 이송하는 일은 아이를 업고 낭떠러지를 건너는 것 만큼 위험했다”고 말했다. 이송 당시 몸무게가 570g이었던 보라는 호흡을 가능하게 하는 기도관, 빨대보다 가느다란 정맥영양주사관 등 몸에 튜브 5개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기체가 흔들리거나 기도관을 살짝만 잘못 건드려도 관이 기도에 박혀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다.
폐의 허파꽈리는 미성숙해 잠자리 날개처럼 연약했다. 기내가 좁아 인공호흡기를 쓸 수도 없었다. 의료진은 작은 풍선처럼 생긴 수동식 인공호흡기(앰브백)를 한 번에 공기 3cc가 들어가도록 비행시간 1시간 반 동안 1분에 40∼60회씩 일정하게 누르고 떼기를 반복했다. 유 교수는 “앰브백을 조금만 세게 눌러도 공기가 과도하게 들어가 폐가 터질 수 있었다”고 당시 위험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송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다. 의료진은 보라가 이송 뒤 자주 호흡 곤란을 겪어 걱정이었다. 진단 결과 기관지 안쪽에 얇은 막이 호흡을 가로막고 있어 수술로 이를 제거했다. 문제가 됐던 동맥관개존은 다행히 자연적으로 닫혀 수술하지 않아도 됐다. 통상 보라 정도 몸무게를 가진 초미숙아는 4개월이면 퇴원하지만, 보라는 발육이 제대로 안 돼 6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30일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김 교수는 “이른둥이 치료는 엄마 배 속의 태아에서 세상 밖 신생아로의 전이가 어려운 생명을 치료하는 응급의학”이라며 “미숙아 치료는 첨단장비뿐만 아니라 의료진의 정성과 사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