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규 천안함46용사유족회장
지난해 7월부터 천안함 유가족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박병규 천안함46용사유족회장은 27일 “명백한 북한의 소행인 천안함 폭침을 놓고 정치인과 국민들이 분열된 모습을 보이기에 북한이 5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령도=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천안함 유가족들이 28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의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에서 참배하고 있다.
유가족 대표로 먼저 헌화한 뒤 흔들리는 배에서 다른 유가족을 부축하던 박병규 천안함46용사유족회장(59)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 회장은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고 박석원 상사의 아버지다. 지난해 7월 2대 회장으로 선출돼 유족회를 이끌고 있다. 박 회장은 아내 남상분 씨(52), 2012년 입양한 두 아들 가운데 막내(6)와 동행하려 했는데 아이가 갑자기 몸살이 나는 바람에 홀로 백령도에 왔다. 평소 조용한 성격이라는 박 회장은 가끔 아내나 아이와 통화할 때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천안함 유가족들이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에서 참배를 하고 해상위령제를 지낸 27∼28일 박 회장과 동행하며 백령도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 회장은 수시로 “정치권이 안보만큼은 여야 구분 없이 힘을 합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또 “생존 장병이 패잔병 취급 받는 게 싫다”고 말했다.
가칭 ‘안보의 날’ 표현 정이 안 가
“행사 참석, 언론 인터뷰 등 정신없이 지내다가 인천에 도착하니 오후 9시였어요. 5년 전 천안함이 침몰한 시간이 9시 22분이죠. 마음이 막막해져 한동안 시계를 멍하니 바라봤어요. 직업이 목사라 술을 안 마시지만, 이날만큼은 술 한잔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더군요.”
그는 매년 26일 추모식 행사가 끝난 다음이 더 힘들다고 했다.
“추모식 준비할 동안은 바빠서 잘 모르고 있다가, 오후가 지나고 혼자가 되면 ‘아, 내 아들이 이날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멍한 표정으로 TV를 하루 종일 보고, 백령도 가는 배를 타게 돼요. 타면서도 문득 ‘내가 왜 이 배를 타고 있을까. 내 아들이 죽어서 그렇구나’ 이런 생각이 반복되는데 이 순간이 정말 괴롭죠.”
정부는 국가 주관 공식 추모식은 올해가 마지막이며, 내년부터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제2 연평해전 추모행사를 통합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박 회장이 3월 26일 행사 준비로 바쁜 건 올해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뜻. 유가족의 반응을 묻자 “아직 공식적으로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다”면서도 정부 방침에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는 “제2 연평해전 전사자인 고 윤영하 소령 유가족, 천안함 실종자를 수색하다 목숨을 잃은 고 한주호 준위 유가족에게도 의견을 물어봐야겠지만 그분들도 가족의 ‘기일’을 합치는 게 내키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동행한 박래범 천안함재단 사무총장은 “3월 26일은 꼭 지킬 것”이라며 “안보의 날이 신설되더라도, 가족들이 어떤 날을 더 중시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냐”라고 반문했다.
北 사과 안하는건 우리 내부 분열탓
백령도로 향하는 4시간 동안 그는 TV에서 흘러나오는 천안함 관련 뉴스를 열심히 봤다. TV에서는 정치인이나 평론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천안함 5주기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그가 대뜸 “천안함의 진실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북한 잠수정이 어뢰로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을 공격해 배가 침몰하고 46명이 전사한 북한의 도발’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공격이 아니라 조준사격”이라고 수정해줬다.
박 회장은 “5년이나 됐는데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정치인이 아직도 많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천안함 사건, 천안함 침몰 또는 천안함 사태라는 표현에 큰 거부감을 보였다. 북한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용어라는 것.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5일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한심하다”고 평가했다.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우리 사회가 일치된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북한이 천안함 폭침을 사과하지 않는 거예요. 북한의 위협과 뻔뻔함이 통하는 건 바로 우리 내부의 분열 때문이죠. 안보에 있어서만큼은 화합과 단결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분열을 만들고 있으니, 북한보다 더 위험한 짓을 하는 ‘주적’인 셈이죠.”
그는 기억에 남거나, 가족들의 마음을 움직인 정치인이 있냐고 묻자 곧바로 “없다”고 답했다.
박 회장에게 천안함 폭침 후 이명박 정부가 취한 5·24조치의 해제에 대해 물었다. 방북과 남북교역, 대북투자 원칙적 금지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5·24조치가 남북관계 회복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상황이란 건 그도 잘 알았다. 그는 올해 초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밝혔듯 “북한이 먼저 진정성을 보이고 사과해야 5·24조치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인이나 국민 모두 천안함 폭침이 북한 짓이라는 걸 100% 동의한다면, 당장이라도 5·24조치 풀어도 되죠. 우리 국민 모두가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했다고 믿는다면 북한의 사과 여부는 별로 중요치 않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아직도 북한이 천안함 폭침을 일으켰다는 걸 믿지 않는 사람이 많으니 북한이 저렇게 사과 없이 5·24조치 해제만을 외치는 것이죠.”
생존 장병은 우리의 가족
27일 오후 백령도의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에서 참배한 뒤 인사말에 나선 박 회장은 “천안함은 승리한 작전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58인의 생존 장병은 패잔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 등 이날 백령도까지 동행한 생존 장병 13명은 조용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유가족들은 이틀 내내 생존 장병들을 살뜰하게 챙겼다. 27일 오후 숙소로 돌아온 유가족과 생존 장병은 함께 가볍게 술을 마시며 이야기했다. 일부 유가족은 “우리는 해군이다, 바다의 방패”로 시작하는 해군가를 부르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위령탑 참배를 마친 뒤 생존 장병들은 유가족과 함께 백령도의 명승지를 거닐었다. 함께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안부를 물으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고 민평기 상사 모친 윤청자 씨(72)와 사진을 찍던 최 전 함장은 “2013년 부친상을 당했을 때 유가족들이 광주까지 내려왔다. 가족처럼 챙겨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자신의 모바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소개글을 보여줬다. ‘46+58=104’라고 적혀 있었다.
“천안함은 104명이 타고 있었던 배예요. 전사한 46명이 영웅이면, 58명도 영웅인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이들 가운데 누구도 비겁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생존 장병들은 여전히 죄인 취급받는 것 같아 안타깝죠. 생존 장병이 이런 대우 받아선 안 됩니다.”
천안함 유가족회는 생존 장병을 지원하고 싶어 한다. 생활비도 지원해주고, 8명의 장병에게 멘토를 연결해 심리 안정 등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박 회장은 “특히 전역자들은 우리가 다가가기에 한계가 있다.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애정을 가지고 계속 연락하고 챙기려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에게 천안함 유가족회의 향후 목표와 계획을 물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사고 때 전남 진도군에 내려가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 노숙자 밥퍼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박 회장은 소통을 이야기했다.
유가족 스스로 돌보는 시간 만들 것
“전임자인 이인옥 씨가 4년 동안 회장을 맡았는데, 가족 소통이 가장 어려워 보여요. 이해시키고, 소통하고, 화합하는 것이죠. 끊임없이 노력한 덕분에 46용사 유가족 전원이 아직도 함께 만나 이야기하고 행사에도 참석하죠. 그런 모습이 앞으로 10년, 20년 이어지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이 전 회장은 “가치관과 살아온 환경이 다른 유가족들은 감정적이고 격앙된 상태였다. 그게 누그러지는 데 3년 정도 걸린 것 같다”고 했다. 올해는 마음을 추스른 유가족들이 언론 인터뷰에도 많이 응했다는 박 회장은 “가족들이 늘 화합할 수 있도록 챙기는 게 내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가족들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백서 제작 등 ‘분수를 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가족들이 그동안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했잖아요. 올해는 여름에 수련회나 가족 휴양모임을 만들어 치유나 힐링을 해보려고 해요. 스스로 돌보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목숨을 바친 우리 아들을 더 오래 기억하고, 46용사들의 헌신을 많이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목표를 말하던 박 회장이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의 고 박석원 상사의 부조를 어루만졌다. 그는 인터뷰 하는 동안 아들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백령도에 오기만 하면 마음이 먹먹하다”고만 했다. ―백령도에서
이건혁 기자 gun@donga.com